목장탐방
맑은 우물 옆에 펼쳐진 경주마의 고향 -초원목장
-예로부터 물이 맑은 고을로 지명조차 정읍(井邑)이라 유래한 그 곳에, 한때 과천벌을 호령했던 암말들이 모여있다. 푸른 초지 위로 2세마 생산의 꿈이 펼쳐진 “초원목장”에 다녀왔다.-

-‘초원의 빛’으로 물들기까지-
불과 3∼4년 전만 해도 잡목으로 무성했던 전북 정읍군 소성면 신천리의 넓은 산자락에는 지금 발목까지 차 오르는 초지로 온통 푸른빛 일색이다. 현재 정읍 축협의 상무이사로 지난 20여 년 동안 젖소, 한우, 개, 염소 등을 사육했던 김영문(48세) 초원목장 대표가 경주마 생산에 뛰어들면서 나타난 변화다. 2만5천여 평에 달하는 잘 정돈된 초지는 이곳 목장의 자부심으로 여겨질 만큼 국내 수십 곳의 내륙목장 가운데 최고수준이라고 한다. 54년 말띠 생으로 인공수정사 출신인 김영문 대표는 그동안 수많은 가축을 사육하면서, 수정사로서 역량을 가장 크게 발휘할 수 있는 분야가 경주마 생산이라고 판단하여 본격적으로 생산목장을 조성하게 됐다고 한다. 우수한 혈통을 가진 씨수말과 씨암말을 교배시켜 훌륭한 경주마를 생산하는 것이야말로 축산기술의 꽃으로 김 대표의 오랜 꿈이었다. 1997년 11월 말, 씨암말 3두를 시작으로 초원목장의 태동을 알렸다. 그러나 처음 1년 간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 당시 불모지나 다름없던 경주마 생산과정을 오직 책과 임상실험에만 의존하며 스스로 확립해나가야만 했던 결과, 엄청난 댓가를 치른 끝에 현재의 우수한 생산기술을 뿌리내릴 수 있었다. 목장 개장이래 출산성공률 100%의 신화를 이어가고 있는 비결에는 지난날 몸소 체득하며 배운 진한 인내가 숨어있다. 현재 씨암말 22두, 시정마 1두, 당세마 9두, 2세마 3두를 포함한 총 35두 가량의 마필로 갈수록 목장규모가 확장일로에 있다.

-우수한 씨암말 확보가 가장 중요하다-
그동안 본지에서는 제주도와 내륙의 수많은 생산목장을 취재하며 그들만의 독특한 경주마 생산 기술을 소개한 바 있다. 그것에 비추어보자면 이곳 초원목장의 운영철학에는 한가지 독특한 점이 있다. 바로 씨암말의 혈통과 현역 경주마 시절 보여준 자질을 굉장히 중시한다는 것이다. 요즘 ‘디디미’와 ‘피어슬리’로 대표되는 씨수말과의 성공적인 교배가 최대현안인 민간목장의 현실에서 다소 새로운 접근방식이다. 하지만 부계보다는 모계의 혈통과 유전인자가 망아지의 형질에 더 우세하다는 것이 김영문 대표의 확고한 지론이다. 따라서 이곳 초원 목장에는 우수한 씨암말 확보를 위해 아낌없는 투자를 단행, 과거 과천벌에서 여장부로 이름이 높았던 암말들을 대거 확보하고 있다. 초원목장이 소유하고 있는 씨암말은 다음과 같다.
◆레이디부아르: 우근민(현 제주지사)마주의 소유마였으나, 진균성 피부염이라는 질병으로 퇴역 후 이곳 초원목장으로 왔다. 정읍 지방의 맑은 물과 황토에서 충분한 햇빛을 받으며, 참깨로 가공한 특식과 이곳 초원목장의 자랑인 드넓은 초지에서 운동을 병행함으로서 완쾌됐다. 현재 건강한 자마를 생산하며 씨암말로서 성공적인 삶을 보내고 있다.
◆굿베스트
◆청정심
◆가화
◆파워스피드
◆화채봉
◆홀아웃
◆용운천
◆이루다
◆BASSO: 우수한 씨암말 확보를 위해, 호주에서 직수입한 마필로 현재 ‘사일런트워리어’의 자마를 임신하고 있다. 전 마필보건소 수의사로 현재 호주 이민중인 김창식씨의 주선으로 구입. 도입가 5천만원.

-과천벌 출격 준비 끝 “우리를 주목하라! ”-
푸른빛이 넘실대는 초지에서 한가롭게 풀을 뜯다가, 가끔은 달려보기도 하며 망중한을 즐기는 어린 망아지들이 있다. 출산 후 6개월 동안 어미 말과 목장식구들의 집중적인 보살핌을 받은 당세마들은 넓은 초지가 펼쳐진 방목장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보내며 홀로서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 가운데 당당한 체구와 형형한 눈빛으로, 이미 나무랄 데 없는 경주마로서의 골격을 갖춘 2세마들이 눈에 띈다. 이곳 경주마의 고향 ‘초원’을 곧 떠나게 될 것임을 암시하듯, 무료한 시간에 답답해하며 연신 투레질을 해대고 있다. 이곳 초원목장에서 자랑하는 망아지로 곧 과천벌에 데뷔해 국산마 판도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기대주의 면면을 소개한다. 김영문 대표의 해박한 혈통분석에 따라 가장 우수한 조합으로 탄생한 이들 3두의 예비 경주마를 미리 만나보자.

◆NOTHIN LEICA DANE(부)→ 1995년 V.R.C Derby 우승마
  DEARS PIE(모)→ 디어스파이의 부마인 ‘스펙터클비드’는 켄터키더비 우승마다.
  : 초원목장에서 가장 기대를 걸고 있는 마필로서 내심 국산마 최강자로의 성장을 점쳐 보는 기대주다. 회색 수말이며 김영문 대표가 최근 개별거래로 매도할 때, 경주마 퇴역 후 이곳 초원목장에 씨수말로 돌려 받는다는 부대조건을 걸고 계약서를 작성했을 만큼, 혈통이 우수한 마필이다.

◆사일런트워리어(부)
  RUFFEN(모): 호주에서 고가에 직수입된 씨암말로 현역 경주마 시절, 발군의 기량을 보였다.
  : 개별구매로 18조 박대흥 조교사와 계약된 상태다.

◆ 리비어(부)
  볼드리스테이티드(모)
  :경매 예정마

-초원목장의 미래- “당대제일, 코란도 데려올 생각이다.”
우수한 씨암말 확보를 위해서라면 만사 제쳐두고 달려가는 김영문 대표. 현재 각각 8세마와 9세마로서 무적의 암말로 과천벌을 호령했던 ‘코란’(ITC트로피 우승마)과 ‘당대제일’(경마대회 4관왕)도 김 대표의 구입 타켓이 된지 이미 오래다. 오랜 혈통 분석상 최상의 씨암말 조건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는 ‘코란’, 그리고 과천벌 최고 암말을 어느 누구에게도 뺏길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당대제일’. 김 대표는 이러한 우수한 씨암말의 도입만이 “초원”의 미래를 보장한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하루빨리 국산마의 수준이 외국의 Derby경마대회에서도 통할 수 있을 만큼 업그레이드되길 희망하는 김 대표는 본지에서 4월 초 기획한 “홍콩 선진경마 참관”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평가를 내렸다. 경마선진국의 높은 경마시행 방식을 자주 접해 봄으로서 국내와 비교, 한국경마 발전에 훌륭한 밑걸음이 될 수 있다는 논지를 덧붙였다. 대를 이어 “초원목장”을 경주마의 고향으로 남게 하고 싶다는 김 대표. 그의 옆에는 “앞으로 조금씩 조금씩 늘려갈 생각”이라는 그의 부인이 꿋꿋하게 내조하고 있다.

-원당팀에 감사- “왕복 10시간의 불편에도 정성스런 보건행정”
전반적인 마필 사양기술자가 없음과 수의사 인원의 부족, 기타 현실적인 도움과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화이트칼라로 넘쳐나는 마사회 조직 등, 여러 가지 불만을 토로하는 김 대표이지만, 1주일에 한번씩 순회왕진을 오는 원당팀 수의사들의 노고에 대해서는 감사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경기도 원당에서 전북 정읍까지는 왕복 10시간이 넘는 고행길. 언제나 따뜻한 인사말과 함께 정성스런 진료를 다하는 원당팀이 있어, 그는 항상 든든하다. 최근 전북 익산의 제2 육성목장 준공으로 인해 한 단계 발빠른 서비스를 기대할 수 있게 된 점도 고무적이다.

-김영문 대표 인터뷰-
―경주마 생산 기타, 축산업에 전념하게 된 동기는?
▲그동안 축산업으로 한평생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은 동물을 그만큼 좋아했기 때문이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진돗개 품종 경진대회가 열렸는데 우승했던 기억이 이채롭다. 인공수정사로서 여러 가지 일을 해왔지만, 경주마 생산은 차원이 다른 일이다. 우수한 혈통을 조합해 능력마를 생산하고, 그 마필이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것을 지켜본다는 건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보람된 일이다. 나의 당대에 국산마가 세계적인 삼관경주에 나가 우승을 거두는 것이 삶의 목표다.

―초지 조성을 위해 어떤 투자를 했나?
▲목장의 기본은 넓은 초지를 마련해서 씨암말과 망아지들이 한가롭게 풀을 뜯게 하는 것이다. 산기슭을 갈아엎고 거름을 뿌려 마상토로 만드는데 거의 3년이 소요됐다. 가뭄에 덜 타도록 하기 위해 7백만원 상당의 퇴비를 뿌렸다. 어린 망아지들이 맘껏 달릴 수 있을 만큼 계속 확장해 나가겠다.

―호주에서 5천만원 상당의 씨암말을 수입했는데, 너무 무리한 투자는 아닌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제 우리 국산마들도 세계 속에 내놓고 자랑할 수 있을 만큼,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당연히 투자가 선행되어야 한다. 현재 여건상 무리가 있더라도, 이러한 투자의 관행이 시작됨으로서 우리나라의 경주마 투자에 대한 인식이 한 단계 도약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출산성공률 100%에 하나같이 순탄한 분만을 하고 있다. 남다른 비결이라면?
▲말은 내 자식이라는 믿음으로 보살피고 있다. 특히 생산목장은 씨암말의 철저한 관리와 청결상태 유지, 그리고 발빠른 치료의 삼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 출산에 임박한 씨암말에게는 우리 목장에서 특별히 제조한 사료를 먹인다. 구체적인 내용은 비밀?이고, 다만 미네랄, 비타민, 칼슘 등이 포함된 특식이다.

―나름의 목장 운영방식이 있다면?
▲현재 40여 두에 달하는 씨암말과 어린 망아지가 이 곳에 있다. 그동안 목장을 운영하면서 개체관리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현재 ‘파워스피드’라는 성질 칼칼한 씨암말이 있다. ‘타임스타’와 교배를 시켜 자마를 보게 됐는데, ‘파워스피드’의 악벽이 너무 심한 나머지, 제 새끼조차도 가까이 오는 것을 싫어하며 허구한날 뒷발질을 해댔다. 어미의 젖을 먹기 위해 어린 망아지는 필사적으로 다가갔으나, 어미의 축벽으로 자주 부상을 입는 수난을 당하게 됐다. 그래서 그 망아지에게는 따로 특식을 마련해주며 개별적인 관리에 신경 쓰고 있다. 목장을 운영할 때는 보유중인 마필들의 성격과 악벽, 기타 세세한 부분에까지 손길이 미쳐야 할 것으로 본다.

【정읍= 손성호 기자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