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로의 천하장사 ‘지구력’

1995년 연도 대표마 ‘지구력’
1995년 4월 16일(일) 제8경주 2300m 레이스로 펼쳐진 제 11회 마사회장배 경마대회는 총 상금 1억원의 상금으로 치러진 첫 대회라는 의미와 함께, 1994 그랑프리에서 자웅을 겨뤘던 1등급 준족들이 불과 넉 달간의 시차를 두고 다시 모인 대회였다. 그날 최고 인기마는 전년도 그랑프리 우승마로서 3연승 달리며 전성기를 구가하던 4번 ‘지구력’. 다만 연승과 함께 꾸준히 불어난 부담중량이 60Kg으로 책정되며 이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 단승식 배당률 2.3배를 형성했다. 11두의 상대마 가운데 5번 ‘보은’과 7번 ‘경지’가 비교적 높은 59Kg의 핸디캡 중량이 부과되며, 12번 ‘거창’, 6번 ‘바바리아’ 3번 ‘작은거인’등의 마필들과 실력이 엇비슷하게 맞춰졌다. 그랑프리에서 과중량에 무너져 출전마 중 최하위의 수모를 당했던 ‘대견’이 빠져 아쉬웠으나, ‘지구력’이라는 신흥 명마의 일취월장하는 기량을 보기 위한 7만8천여 팬들의 발 디딜 틈 없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뤘다. 오후 3시 10분 경 게이트가 열리자 일제히 출발한 가운데, 제일 먼저 선두를 점한 것은 7번 ‘경지’. 그 뒤를 12번 ‘거창’, 1번 ‘사현정’, 9번 ‘거루’, 4번 ‘지구력’, 10번 ‘외포리’가 달리고 있다. 2코너 초입부분에서 ‘거창’이 ‘경지’를 앞지르는가 싶더니, 결국 노장 ‘경지’는 나이는 속일 수 없는 듯 레이스 초반부터 후미로 떨어지고 말았다. ‘거창’이 선두를 이끄는 불안한 경주전개가 이어지는 가운데, 3코너에 접어들면서 일대변동이 나타났다. 바로 ‘지구력’이 바깥쪽으로 큰 원을 그리며 놀라운 속도로 다른 말들을 앞서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덧 ‘거창’만을 남겨둔 가운데 결승주로에 접어들고, 진입과 동시에 ‘지구력’은 단숨에 선두를 치고 나왔다. 이제 남은 것은 결승선까지 버텨 줄 지구력 뿐. 추입마들의 맹공이 예상되던 가운데, 경주 내내 중위권을 형성했던 ‘사현정’이 마지막 한발을 노리며 ‘지구력’의 뒤를 급습해 왔다. 하지만 막판 뒤집기를 노리기엔 ‘지구력’의 발걸음이 살아있어 반 마신 차의 아쉬운 석패. ‘지구력’의 놀라운 체력이 돋보인 값진 승리였다.

안동현 마주
경주 당일 모친의 칠순잔치가 겹쳐 참석치 못했다는 안동현 마주는 ‘지구력’이 벌어들인 전년도 그랑프리 우승상금으로 신마 3두를 구입하는 열성을 보였다. 마명도 ‘지구호’, ‘지구원’으로 지어, 자신의 최대 자랑거리인‘지구력’의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임대규 기수
1993년 뚝섬배 경마대회에서 소속조의 ‘둘리’에 기승해서 경마대회 첫 우승을 기록한 임대규 기수는 ‘지구력’이라는 명마를 만나, 그랑프리 우승에 이은 마사회장배 석권의 감격까지 맛보게 됐다. 시상식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지구력’에게 한없는 고마움을 표시한  그는 1991년 이후 현재까지 무려 10년 동안 한 우물을 파고 있는 14조의 대들보다.        

【손성호 기자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