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명승부-과천벌 ‘대왕’의 화려한 등극식-제9회 한국마사회장배 경마대회

-‘차돌’의 후계자 ‘대왕’
1989년 한국경마의 삼관 경주라 불리던 무궁화배, 마사회장배, 그랑프리 경마대회를 연달아 제패했던 ‘차돌’. 그 불세출의 추입마가 퇴조기에 접어들 무렵, 570Kg에 달하는 체구와 지칠 줄 모르는 선행력으로 일찌감치 ‘차돌’의 뒤를 이을 거한으로 지목 받던 경주마가 있었다. 경주에 나서면 다른 출전마보다 족히 머리 하나는 더 큼직해 보였던 우람한 체구 때문에, 경마팬들로 하여금 ‘차돌’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던 ‘대왕’. 그 마필이 1993년 4월 마사회장배 우승으로 보여준 가능성은 과천벌 ‘대왕’으로의 등극을 어느 누구도 의심치 않을 만한 것이었다. 하지만 600Kg에 육박하는 체중이 결국 앞다리 질병으로 이어져 13전이라는 짧은 전적을 남긴 채, 경주마 인생을 마감하고야 마는 아쉬움을 남겼다. 마명처럼 ‘대왕’의 풍모를 간직했던 이 경주마가 절정기를 구가했던 제9회 마사회장배 경마대회를 소개한다.

-우승마로 지목된 ‘대왕’
1993년 4월 18일 제10경주 2200m 레이스로 펼쳐진 그 날 대회에는 상승세의 건각 12두가 출사표를 던졌으나, 경주 전부터 대부분의 경마팬들은 ‘대왕’을 우승후보로 점찍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선행마 ‘대왕’은 직전 뚝섬배 경마대회에서의 4위를 제외하면 9전 5승 2위 4회를 기록하고 있었으며, 예시장에서 보여준 우람한 체구는 여타 출전마들을 압도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이윽고 출발 신호와 함께 12두의 마필들이 일제히 게이트를 박차고 뛰쳐나갔다. 초반 치열한 선두 다툼이 있었으나, 제일 먼저 선두를 점한 것은 역시 김형수 기수의 11번 ‘대왕’이었다. ‘대왕’을 정점으로 12번 ‘명물’(기수 황영원)과  10번 ‘출동선’(기수 안병기)의 거센 추격이 이어졌다. 그 후 4코너 근처에서 9번 ‘곰돌이’(기수 이상동)가 갑자기 2위까지 치고 나오면서, 결승주로 초입 부분까지 ‘대왕’과 ‘곰돌이’의 지루한 힘 겨루기는 계속됐다. 결승선 전방 200m를 앞두고 승부처가 갈리는 가운데, ‘대왕’과 ‘곰돌이’의 접전에 4번 ‘모델’(기수 김태경)까지 가세, 육안으로 순위를 가리기 어려운 상태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사진판정까지 가는 끝에 11번 ‘대왕’의 근소한 목 차이 우승의 결과로 확정됐다.

-지용철 조교사
당대의 명마 ‘포경선’에 기승하기도 했던 유명 기수 출신의 지용철 조교사는 86년 조교사 면허를 취득한 이래, ‘대왕’으로 경마대회 첫 우승의 영광을 누리게 됐다. 부동의 인기마 ‘대왕’에 쏠린 수많은 팬들의 기대가 부담스러웠다고 첫 소감을 밝힌 그는 당시 견습기수였던 김형수 기수를 기승 시킨 것에 대해, 화목한 마방 분위기 조성과 소속조 기수에 대한 신뢰감의 표현이었다고 언급했다.

-김형수 기수
기수양성소 15기 출신으로서 그 무렵 견습기수 신분이었던 김형수 기수는 ‘대왕’으로 우승을 차지해, 많은 동료기수들의 부러움을 샀다. 우승 인터뷰에서 김 기수는 경주 전 많은 격려를 해주셨던 지용철 조교사와 선배 기수들에 대한 감사의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손성호 기자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