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형적인 추입형 각질로서 발동이 늦게 걸리는 습성 때문에, 데뷔초 단거리 경주에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승급을 거듭하면서 진면목을 나타낸 경주마가 있었다. 체구에 비해 뛰어난 승부근성으로, 혼전경주에서 보여준 놀라운 추입력은 흡사 전성기의 ‘차돌’을 연상케 할 만큼 탁월한 것으로 평가받던 마필이었다.

호주산 경주마들의 경연장 -페케남컵-
호주의 페케남 경마클럽과 컵 교환 경주로 개최된 이래, 경마를 통한 민간외교의 한 몫을 담당하기도 했던 페케남컵 경마대회는 호주산 태생의 3세 이상 7세 이하의 12두 준족들이 출사표를 던진 경주였다. 1992년 5월 24일 4만 2천여 관중들이 운집한 가운데 제7경주 1800m 레이스로 펼쳐진 그 날은 초여름의 무더운 날씨 속에 가랑비를 뿌리며, 그 당시 한국경마 사상 최다 관중 동원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며 성대하게 치러졌다.

‘대성리’의 막판 절묘한 추입
그 날 오후 3시 50분, 출발신호에 맞춰 김혜성 기수 기승한 1번 ‘귀족’과 서범석 기수의 5번 ‘태산고악’ 그리고 8B번 ‘섭리호’가 나란히 선두를 달리고, 2번 ‘경계선’이 뒤따르는 형국으로 레이스가 전개됐다. 2코너에 접어들고 뒷 직선주로를 달리자, 선두를 지키던 1번 ‘귀족’이 역부족인 듯 뒤로 쳐지고, 거리를 좁히던 5번 ‘태산고악’이 1위로 치고 나갔다. 4코너를 넘어서 결승주로에 접어들 때까지도 ‘태산고악’의 여유 있는 단독선행은 유지됐다. 그러나 결승선 전방 300m를 앞에 두고, 외곽코스로 선두권 합류를 시도하던 1번 ‘귀족’과 7B번 ‘고사포’까지 2위권 경쟁에 나서는 사이, 4번 ‘대성리’가 바깥쪽에서 선두를 덮치는 긴박한 상황이 연출됐다. 결국 경주초반 힘을 아껴둔 ‘대성리’에 김문갑 기수의 매서운 채찍질이 뿌려지며 페케남컵 트로피의 주인공은 결정됐다.
                                                                                      
짙은 콧수염의 최태환 조교사
그 무렵 88년도 일간스포츠배 우승 이후 4년여만에 경마대회 우승트로피를 차지한 ‘대성리’의 최태환 조교사. 그는 시상식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대성리’가 결승선을 1위로 통과하기 전까지도 우승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한다. 페케남컵을 앞두고 두 달여 전부터 콧수염을 길렀다는 그는 “묘하게 행운의 징표와 같은 느낌이다.”는 우승소감을 밝혔다.

우승기수 김문갑 기수
1994년 1월에 조교사로 데뷔 후 ‘핵돌풍’의 코리안더비 우승 등, 53조의 성공시대를 열어가고 있는 김문갑 조교사는 그 날 경주에서 멋진 추입을 선보이며 페케남 컵 트로피를 안았다. 경주 직후 가진 인터뷰에서 개인마주제 전환을 앞두고 개인관리에 더욱 힘을 쓰고 싶다는 계획과 함께, 두 딸을 포함한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인사말도 잊지 않았다.  

【손성호 기자 ssh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