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속의 애마, 신출내기 꿈을 이뤄준 ‘파수병’- 김명국 조교사

최근 나이 어린 기수들이 경마대회에서 우승을 하면서 이변을 일으키고 있다. 하기야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좋은 마필을 차지하고 난후 어쩌다 기승기회를 잡는다고 해도 주어진 기회를 십분 이용해 좋은 성적을 기록하기란 말그대로 ‘하늘에 별따기’다.
신인기수들의 대활약을 지켜보면서 문득 나에게 첫 경마대회 영광을 안겨준 ‘파수병’이란 마필이 생각이 난다.
85년 제1회 마사회장배 경마대회. 당시 서성석 조교사님이 관리하고 있던 ‘파수병’에 기승해 첫 경마대회 출전이라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현재 제주도에 계시는 서성석 조교사님은 기수생활을 하시다가 조교사가 된 분인데 기수시절부터 알아주던 승부사였다. 얼마나 승부욕이 강하고 작전에 능하던지 ‘여우’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다.
‘파수병’은 신마 때부터 내가 기승했던 마필이었다. 허리가 좋지 않아 무리한 훈련을 하면 뒤가 엉켜버리는 마필이었다. 당시 선배들이 그런 마필들은 모래에 굴리는 것이 마필의 몸을 풀어준다고 했기 때문에 ‘파수병’을 훈련시키고는 모래주로에서 꼭 구르게 했다. 마필도 그것이 좋았던지 훈련이 끝나고 안장을 내리면 으레 모래주로를 구를 준비를 하곤 했다.
경마대회에 출전을 신청해 놓고 전날 서조교사님과 만나 작전을 짰다. 둘이 머리를 맞대고 짜낸 것이 선행작전이다. ‘파수병’이 84년 도입후 데뷔시에는 80%에 이르는 승률을 기록했지만 거리가 늘어나면서 이렇다할 모습을 보이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기는 작전이란 것은 애초에 꿈이었고, 다만 조그만 가능성이라도 붙들고자 한 것이 바로 선행작전이었던 것이다.
현재는 수말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그당시는 암말들이 대부분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던 때다. 그렇기 때문에 수말인‘파수병’은 이렇다할 인기를 모으지 못했다. 전혀 예상에도 없는 마필로 인기면에서 거의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금도 당시의 경주장면이 녹화된 테이프를 가끔씩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나 작전이 잘 맞아 떨어졌던 경주라고 생각된다. 아련한 추억속의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미소를 짓게 된다.
경주얘기로 돌아가서 스타트가 되면서 힘차게 치고 나가 선두를 장악했다. 그리고 1코너쯤에서 페이스를 늦춰 뒷말들을 괴롭혔다. 상대마를 의식해선지 다른 마필들은 앞으로 나서지도 못하고 나와함께 페이스를 맞추느라 고생을 해야만 했다.
강약을 조절한 나의 페이스에 뒷말들은 앞으로 나오지도 못하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고, 심한 경우 기수가 떨어질뻔한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고, 어떤 마필은 은행나무 밑으로 들어갔다 나오는 마필도 있었다. (당시 뚝섬경마장의 1코너 부근에는 은행나무가 있었다)
인기를 모았던 마필들은 내 페이스에 말려선지 결승선에 다가서서도 뒤에서 나오지 못하고 결국 그렇게 결승선을 통과했다.
80년 데뷔해 5년여를 맞이하던 때였지만 그당시 무수히 많은 소위 잘나가는 선배들에 비해선 나는 한참 어린 신출내기에 불과했다.
경주가 끝난후 재결실에 불려가 혼쭐이 났다. 이유는 내가 시도한 방법때문에 위험한 장면이 연출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경마대회인데 내가 대회를 망쳤다는 것이 재결의 판단이었다. 그러나 당시 더욱 걱정이 된 것은 선배들이었다. 선배들이 어떻게 나올까 하는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반응은 담담했다. 아마도 후배가 경마대회 우승을 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간 것 같다.
‘파수병’은 신출내기에 속하는 나에게 첫 경마대회 출전에 우승이라는 영광을 안겨준 마필이다. 영원히 잊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이후 ‘파수병’은 더이상의 성적을 거두지 못하고 결국 경마장을 떠나고 말았다. 이후 경마장에선 김명국은 말을 작살낸다는 말이 떠돌게 되었다.
‘파수병’이 경마대회 첫 우승을 안겨준 마필이라면 ‘여의주’는 나에게 전성기를 가져온 마필이라고 할 수 있다.
80년 중반쯤이면 1등급 마필을 얻어타기가 무척 힘들었을 때다. 특별경주에 출전하는‘여의주’를 얻어타게 된 것은 나에게 크나큰 행운이었다. 당시 잘 나가던 백운기, 양재철(현 조교사) 선배들과 경주를 같이 하게 되었다.
그 경주에는 ‘칙칙폭폭’이라는 걸출한 말이 있었는데, 이성일 기수가 기승하고 있었다. 경주시작부터 결승선을 통과할 때까지 내내 ‘칙칙폭폭’과 선행싸움을 벌였고, 결국은 골인할 때 이길 수 있었다.
아마도 그때부터 나의 전성기가 시작되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다. ‘여의주’와 호흡을 맞추면서 몇번 경주를 치르고 나니까 점점 자신감이 붙고 경주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스포츠 선수들은 좋은 코치를 만나야 제대로 자신의 틀을 가질 수 있다. 기수는 다소 특이하지만 좋은 마필을 만나야 기수로 대성할 수 있다. 좋은 마필을 타면서 기승술도 늘고 자신감도 생기게 되는 것이다.
조교사가 된 지금 꼭 한번이라도 모든 사람들의 입에 회자될 만한 명마를 내 손으로 키워내보고 싶다. 이런 꿈은 비단 나만이 아니라 모든 조교사들의 꿈일 것이다.
【정리 : 권순옥 기자】

작 성 자 : 권순옥 jso0106@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