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의 경주마 이야기가 미국 베스트 셀러와 박스 오피스 상위권을 석권하고 있단 이야기는 우리에겐 참 흥미로운 일이다. ‘시비스킷’(Seabiscuit)이라고 불린 이 경주마는 1900년대 중반 경주마의 신화를 창조한 마필이다.
총 89전 33승(블랙타입 26승) 2위 15회의 성적을 거뒀고, 미화로 437,730$을 벌어들였던 이 경주마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지 수많은 우승으로 인한 그의 성적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바로 대공황의 막바지였던 지난 1938년 그가 보여준 전 미국인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였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패한 인생을 살고 있던 기수 폴리드와 조교사 스미스와 짝을 이룬 ‘시비스킷’은 장장 5만 마일이라는 기차 여행을 강해하면서 최고의 경주마들을 모두 물리쳤다. 특히 1938년 11월 당시 최고의 경주마라고 불리던 ‘워드미럴’(War Admiral, 1937년 미국 삼관경주 우승마)과의 맞대결은 미국 경마사상 최고의 대결이었다고 칭하기도 한다. 이 경주에서 4마신차로 압승을 거둔 ‘시비스킷’은 심각한 부상으로 1년을 쉰 이후 다시 산타아니타 핸디캡(Santa Anita H, G1 우승상금 100,000$) 레이스에서 극적으로 재기에 성공, 다시 한번 미국을 열광시키기도 했다.
‘시비스킷’은 부마 ‘하드텍’(Hard Tack)은 사란스 핸디캡(Saranac H) 레이스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보통보다 조금 나은 정도 수준의 경주마로, 씨수말로는 ‘시비스킷’을 배출하긴 했지만 경주성적이나 씨수말 성적 모두 평범한 수준의 마필이었다. 그러나 ‘하드텍’의 부마 ‘맨오워’(Man O’ War)는 21전20승2위1회(프리크닉스, 벨몬트 스테익스 포함)를 거둔 20세기 최고의 경주마로, 당시 미국 3관경주 우승으로 최고의 경주마이자 ‘시비스킷’과의 맞대결로 알려진 ‘워드미럴’의 부마이기도 하다. 씨수말로의 ‘맨오워’는 1926년 미국리딩사이어를 차지한 것을 비롯해 ‘워어드미럴’이 활약하던 1937년 미국 리딩사이어 2위에 오르기도 했고, 이후 수년 동안 미국 리딩브루드메어사이어 상위권을 지키기도 했다.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교배 탓이었는지 현재 ‘맨오워’의 피는 거의 남아있지 않다. 유일한 ‘맨오워’ 계열은 브리더즈컵 2연패를 차지한 ‘워엠블럼’(War Emblem)의 ‘인리얼리티’(In Reality) 계열 정도가 유일하다.
‘시비스킷’은 어떨까? 화려한 경주마 생활로 관심을 모았던 ‘시비스킷’은 당연히 씨수말로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자마들의 성적은 그야말로 형편없었다. 최고 상금을 수득한 경주마는 77,883$의 상금을 벌어들인 ‘크롭이어’(Crop Year)지만, 무려 211번이나 뛰어서 25승 2위 38회의 성적동안 벌어들여 큰 의미가 없고 그나마 블랙타입 우승도 없었다. 유일하게 성공한 자마는 ‘시이스왈로우’(Sea Swallow)로 34전8승2위3회의 성적을 거뒀고, 블랙타입 4승(그나마 Grade 우승은 없다)에 61,869$의 상금을 벌어들인 정도다. 자마들의 수준을 보여주는 AEI는 1.26로 겨우 평균을 넘어서고 있으며, CI는 0.87로 오히려 평균보다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연히 그의 피는 지금 전 세계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국내에도 극히 적은 경주마(‘릴리스두불래버키’, ‘오버더마운틴’) 만이 모의 모계에서 볼 수 있을 정도다.
이렇게 ‘시비스킷’이 경주마로는 성공했지만 씨수말로는 실패했던 이유는 구부정한 앞무릎에 볼품 없는 외모가 유전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지나치게 ‘맨오워’의 피가 난무하며 근친으로 인한 폐해가 아닐까 생각된다. 이는 ‘맨오워’가 씨수말로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현재 ‘맨오워’ 계열의 경주마가 극히 적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영화로도 성공한 ‘시비스킷’이 다음 주면 국내에도 개봉 예정에 있다. 경마 선진국에 비해서 훨씬 홀대를 받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이 영화가 흥행에서 성공할 가능성은 적겠지만, 적어도 경마팬이라면 한 번쯤 관람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작 성 자 : 김중회 ringo@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