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래. 박형 말이 맞네. 1번으로 승부를 했어야 했는데...”
정교수가 탄식하며 말아 쥔 예상지로 자신의 무릎을 쳤다. 1번마는 3,4위와의 격차를 훨씬 벌이며 월등히 앞서 달리던 8번마와 반마신 정도의 차이로 질주해와 결승선을 통과해갔다.
“그라먼 8번하고 1번이 들어 온 거요?”
봉주가 물었다. 종원은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정교수는 쩝하고 입맛을 다시더니
“박형 정말 게임 잘하시오. 여기서 1번말이 어떻게 선입 승부를 할 거라고 예상을 하겠소? 대부분 1번 게이트라 죽기 살기로 뛰쳐나와 8번하고 댕싸움 벌이다가 기껏 버티기 밖에 더 하거나 아니면 8번하고 맞짱뜨다 한수아래의 경주능력과 힘에 밀려 제풀에 나가떨어질 거라고 생각들을 하지.”
했다. 종원은 그런 정교수를 흘낏 보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리플레이 되고 있는 모니터에 시선을 돌리며
“다음에 다시 붙으면 그때는 1번이 8번을 이기겠는데요? 결승선 지나고 나서도 힘이 한참 남았어요. 오히려 1번게이트라 추입탄력을 못 받아 후착을 한 거네요. 4번이나 5번 정도로 배정을 받았으면 코너를 돌때 원심력도 적당히 이용하고 주로도 추입하기 딱 좋아 결승선 직전에는 역전을 했을 수도 있었는데요.”
했다. 정교수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합니다. 박형의 게임분석 능력...”
하고는
“이번 경주에 승부 안하기를 잘했죠?”
하며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봉주가
“그럼 안 맞은 거요? 아까 1번도 사고... 4번도 사고... 8번도 사고 했다믄서라우?”
하자 정교수가
“4를 놓고 1하고 8을 샀으니까 못 맞춘 거죠.”
하며 다시 아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봉주는 투덜대듯
“아따 뭔 말이 뭔 말인지 도통 모르겄네. 난 담배나 한 대 피고 올라요.”
하고 일어나 호주머니에서 담뱃갑과 라이터를 빼내들고 흡연실쪽으로 가버렸다.
“그런데...”
하고 종원이 정교수를 바라보자
“예. 말씀하세요.”
정교수도 종원을 보았다.
“제가 아직 경마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합니다만... 난 4번마가 비록 결승선에 다 와서 급격하게 페이스를 잃고 외각사행을 하며 무너졌지만... 저렇게 잘 뛰어줄 말이라고는 믿어지질 않았거든요? 8번마는 선행능력도 뛰어나고 뒷심도 좋고 나이도 아직 어려 앞으로도 발전가능성이 풍부한 준마급 이상의 경주마로 보이거든요? 그런데 4번마가 8번마와 한 치의 양보도 없이 1000미터 지점까지는 대등한 질주를 했단 말입니다. 여태까지 그런 적이 없었던 말인데요. 지금까지의 전적이 그리 뛰어난 말도 아니었고 최근의 조교 상황도 그렇게 눈에 뛸만한 점도 없었고 경주능력이 갑자기 좋아진 것도 아니고...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해도 봐줄 게 없었어요. 저 같았으면 4번마는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겁니다. 정교수님이 아까 4번마를 가지고 승부하신다고 하기에 내심으로는 비관적이었거든요? 그런데 결과적으로는 입상에 실패를 했지만 4번마가 분명히 승부를 하긴 했어요. 1100미터 경주만 되었어도 8번마와 동반 입상이 될 뻔 했죠. 난 이런 경우의 경주는 아무리 분석을 해봐도 분석이 잘 안  되요. 결국 정교수님이 받았다는 쏘스말이에요. 전혀 근거 없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여태까지 한 번도 선행 나온 적이 없었던 말 아닙니까? 더욱이 전전경주에서는 거의 기복마와 부진마들이 혼합 된 경주편성으로 선행력이 뛰어난 말도 없었는데... 그때도 이렇다 할 승부 의지 한번 보이지 않고 어정쩡한 선입으로 경주를 마쳤었거든요? 그런데 어떻게 이번 경주에는 선행능력과 힘이 뛰어난 8번마가 있는데도 그렇게 강한 선행승부를 할 수 있을까요?”
한 후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두 눈을 껌벅이더니
“이런 경우를 전에도 두어 번 봤었는데... 그때도 정말 경마는 짜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오늘 경주도 그러네요. 더욱이 4번이 쏜다는 쏘스까지 정확히 나왔지 않습니까?”
했다. 정교수는 종원의 얘길 다 듣고 난 후
“그래서 경마는 공부만으로 안 된다고들 하는 가 봅니다. 나도 손게임은 안 해본 게 없어 웬만한 승부게임에는 자신이 있는 편인데 사실 경마에는 두 손 든 셈이거든요.”
하고 다시 쓴 미소를 지어보였다. 종원은 괜스레 고개를 끄덕여보이다가
“우리도 담배 한 대 피우고 오죠.”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럽시다.”
하며 정교수도 뒤따라 일어나 둘은 희뿌연 연기를 뱉어내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 찬 흡연실을 비집고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