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은 그런 규태를 바라만 보더니
"그 경주 대끼리로 들어오면 내가 물어준다니까?"
하고는
"오늘 승부는 이걸로 끝이야."
했었다. 규태는 여전히 잔뜩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아직 10경주 전이니 지금부터 부지런히 사 모으면 못해도 오륙백은 살 수 있을 거야. 그럼 지금까지 저 창구 안으로 밀어 넣기만 했던 돈... 한방에 반 본전은 되찾을 수 있을 거 아냐?"
하며 이제는 애원조로 말했다. 종원은 어깨를 한번 으쓱하더니
"형보고 절대로 이런 게임 같은 거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이래서야. 알아? 모든 것은 적당한 게 좋은 거야. 지금이 바로 적당한 때야. 내말 알아들어?"
했었다. 규태는 볼멘 목소리로
"이길 때 확실히 이기는 게 좋잖아?"
했었다. 종원은 그런 종원을 한참동안 바라보더니
"형이 지금까지 잃은 돈이 모두 얼마야?"
하고 물었었다. 규태는 잠시 망설이다가
"한 삼천.... 조금 넘어...."
했었다.
"막연하게 말고 정확하게!"
종원의 언성이 조금 높아졌다. 규태는
"그래. 삼천 이삼백 정도..."
하고는 말끝을 흐렸었다. 종원은 다시 나직이 한 숨을 내쉬더니
"어이없군."
하는데 규태는 오히려
"그래도 경마 일 년 한 놈치고는 작게 잃은 거란다 야!"
했었다. 종원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뭐?"
하고는
"나도 모르게 일 년 동안이나 경마장 다녔단 얘기잖아?
하고 다시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머쓱해진 규태가 흘낏 종원의 눈치를 살피는데 종원은
"그 돈이었으면 그 빌어먹을 외국은 수십 번도 왔다 갔다 했겠다."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고는
"그 돈만 찾아주면 정말 다시는 경마 않는 거지?"
하고 힘을 주어 물었다.
"그런다고 했잖아?"
규태가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좋아. 다음 주에 되찾아 줄게. 오늘은 그만 가. 오늘 승부는 끝났어."
종원이 그렇게 말하고는 밖으로 나가려 하자 규태는 다시
"11경주 안 하고?"
하고 여전히 11경주에 대한 미련으로 다시 볼멘소리를 했다. 종원은
"11경주에 대끼리로 들어오면 내가 배당만큼 물어준다고 했잖아?"
하고 내뱉고는 저만치 걸어 나갔다. 규태는 그 자리에 서서
"마사회 돈 되찾아가야지 내가 왜 네 돈을 뺏어?"
하고 소리를 높였지만 종원은 아무런 대꾸도 않고 밖으로 나가버렸고 규태는 그제야 하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종원의 뒤를 따랐었다.
규태는 경마장을 빠져나오는 동안에도 여전히 11경주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지 못하고 잔뜩 부어오른 얼굴을 한 채 
"오늘은 확실하게 이기는 날이었는데..."
하고 혼잣말을 중얼거리다가 차가 남태령 고개를 넘어서야 미련을 떨쳐버린 듯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와
"근데 아까도 얘기했었지만 너 참 냉정한 놈이야? 응?"
하더니
"보통 땐 나사하나 빠진 놈처럼 남들은 상상도 못하는 엉뚱한 짓을 잘도 하다가도 승부 같은 걸때는 확 달라진단 말야. 네 머리한번 해부해보고 싶어. 정말!"
했었다. 종원은 그제야 픽-하고 미소 띤 얼굴로 규태를 흘낏 보고는
"내가 어때서?"
"그렇잖아? 백 밀어 넣은 말이 뛰어 들어오는데도 네놈은 눈썹하나 까딱도 않고 마치 당연히 그렇게 되었어야만 한다는 표정으로 폼 딱 잡고 있었잖아?"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건데?"
"남들은 소리소리 지르다 못해 졸도까지 했을 거다. 자그마치 940만원이다. 그 돈이 적은 돈이냐?"
했었다. 종원은 잠시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어보이더니
"그럼 다음에 삼천만원이 들어올 때는 졸도 해줄게."
하고 픽- 웃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