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원은 규태의 말에는 신경도 쓰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착순게시대만을 바라보고 있더니 착순게시대의 확정불빛이 들어오자
"그만 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었다. 종원이 그만 가자고 자리에서 일어서자 규태는 잔뜩 미련 가득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가? 더 안하고?"
하며 따라 일어설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종원은 그런 규태의 표정은 아랑곳 않고 출구 쪽으로 성큼성큼 앞서 내려 가버렸었다. 규태는 마지못해 허둥지둥 종원의 뒤를 따르며
"11경주는 해볼 만한 경준데. 네 말대로 오늘 경주중에 가장 우열이 확실히 들어나는 경주야. 배당도 바람불어줄 말들이 한두 마리 있어서 따블은 넘을 것 같고... 마사회서 오늘 경마장 온 사람들한테 서비스차원으로 붙인 경주라니까? 그 경주에 한번 엎어치기 안 해볼래?"
했었다. 출구를 지나 2층의 복도를 가로질러 에스컬레이터 쪽으로 가는 동안까지 규태의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걷기만 하던 종원이 규태를 힐끗 보며
"11경주... 형 말대로 대끼리로 들어오면 내가 그 돈 물어줄게."
했었다. 규태는 그런 종원을 멀끔히 보더니
"대끼리 아냐?"
하고 물었다. 종원이
"아냐."
하고 단호하게 말하고 에스컬레이터에 오르자 규태도 뒤따라 올랐었다.
"어떻게 알아?"
규태가 다시 묻자 종원은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하고 되물었다. 규태는 잠시 눈을 껌벅이더니
"네가 지금 대끼리 아니라고 했잖아?"
했었다. 종원은 그런 규태를 잠시 보았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규태도 괜스레 머쓱한 기분이 들어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마권구매 창구 쪽으로 가서 2와 11의 복승식을 적중시킨 마권을 창구로 들이밀었다. 종원은 바지호주머니에 두 손을 찔러 넣은 채로 규태의 뒤에 서 있었다.
"현금으로 드려요?"
창구의 여직원이 그렇게 묻는 소리를 듣고서야 규태는 자신이 큰돈을 환불받는 다는 것을 깨달았다. 규태는 종원을 돌아보았다. 종원은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예. 전부..."
하고 규태는 잔뜩 뽐내는 얼굴로 창구여직원을 바라보았다. 창구여직원은 흘낏 미소를 지어보이고는 창구를 막고 뒤로 돌아가서 뒤편에 서있던 다른 여직원과 함께 돈다발을 세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시 창구로 돌아온 여직원은
"940만원이에요."
하고 네 차례에 나누어 돈다발을 창구 밖으로 내밀었다. 규태는 모처럼만에 뿌듯한 기분으로 창구에서 밀려나오는 돈다발들을 거머쥐었다. 옆 창구에서 소액의 환불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부러움과 시샘 섞인 시선들로 규태를 보았다. 규태가 돈다발을 주체하지 못하고 어정쩡한 자세로 종원에게 다가오자 종원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왜이래? 많지도 않은 돈으로 촌스럽게?"
하며 규태가 손에 들고 있던 돈다발들을 규태의 사파리 양주머니들에 쿡쿡 찔러 넣었다. 규태는 어색한미소를 지어보이며
"사실... 나... 여태 저 빌어먹을 놈의 창구에다 열심히 돈만 집어넣어봤지 이렇게 많은 돈은 처음 되받아보거든?"
하고는
"너 지금 내기분이 어떤지 알어?"
하더니 붉으스레 달아오른 얼굴로
"이제 마사회놈들 큰일 났다. 앞으로 박종원이 한테 거덜 나게 생겼다. 그지?"
하고는 연신 들뜬 기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는
"저놈들 돈 있을까? 나중에 대박 맞추고 나면 그때 돈 없다고 오리발 내미는 것 아냐?"
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알았어. 알았어... 그만 가."
하고 종원이 미소 띤 얼굴로 규태를 다독이며 밖으로 나가려 하는데 규태는 종원의 팔을 붙잡고는 다시
"11경주에 이거 대끼리에 엎어치기 해버리자. 틀림없이 대끼리라니까?"
하고 종원의 눈치를 살피다 종원이 아무 대답 없이 긴 숨만을 내쉬자
"까짓 거 꽝되더라도 이백밖에 더 잃어?"
하더니
"좋아! 그럼 원래 본전이었던 이백은 남겨 놓고 딴 돈으로만 튀기자. 어때?"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