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쪽으로 걸음을 옮긴 종원은 이곳저곳에 삼삼오오 둘러앉아 도시락들을 나눠먹는 사람들을 지나쳐 벤치 한곳에 앉는다.
"큰 돈 승부하기에는 경마가 좋아."
라고 오상구와 봉주에게 했던 자신의 말이 생각난다. 세형에게
"그 돈 때문에 규태형이 죽었는데 그 돈 돌려줘버리고 나면 그땐 정말 규태형은 개죽음을 한 게 되는 거야."
하자 세형이 멀뚱한 표정으로
"그럼...?"
하고 두 눈을 껌벅이며 종원을 보았을 때
"규태형 형수한테 그 돈 건네주고 나서 돈 돌려줄 거야."
했었다. 종원은, 오상구와 봉주에게 그랬던 것처럼 세형에게    
"규태형이 죽던 날... 내가 찾아갔을 때... 만약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나한테 형수를 부탁한다고 했었어. 그 말은... 규태형 형수가 홀몸이 아니라는 얘기였어."
했었다. 세형은 두 눈을 똥그랗게 뜬 채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었었다. 종원이 다시
"규태형이 조직을 배신하고... 가장 믿고 따랐던 나를 속이면서까지 일을 벌이고 이 나라를 떠나고 싶어 했던 이유도... 아이에게만큼은 전과로 얼룩진 자신의 흔적들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야."
하고 오상구와 봉주에게 했었던 것처럼 세형에게도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문 채 턱을 괴고 망연히 두 눈만 껌벅여보였었다. 세형이 한참동안 고개를 떨어트린 채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고는 
"규태형 형수한테 그 돈 주고 싶다는 말은 이해하겠는데 규태형 형수한테 그 돈 주고나면 또 돈이 어디서 나서 그 돈을 되돌려주겠다는 거야?"
하자 종원은
"만들어 내야지."
했었다. 세형이 다시
"만들어 내다니?"
하며 황당한 표정으로
"그만한 돈을 만들어? 어떻게?"
하고 물었을 때 종원은
"경마."
하고 짧지만 자신감 가득 찬 목소리로 대답했었다.
"경마로?"
"그래. 경마로."
"경마로 그런 큰돈을 만들어 낼 수 있어?"
"그만한 돈을 만들어내려면 카지노에 가서 큰 게임을 하거나 해야겠지만 꼭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설사 운이 좋아 몇 게임에 이겨 큰돈을 만들어냈다고 해도 나중에 뒷조사를 당할 수도 있고... 경마로는 은밀하게 일을 추진할 수 있고 돈세탁하기도 좋고..."
그랬다. 그때는 정말 자신이 있었다. 얼마간 아니 조금의 시간만 주어진다면 경마를 이용해서라면 그만한 돈을 두 배쯤 늘리는 일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라고 생각했었다. 종원은 경마를 이용해 하루에 수백만 아니 수천만원씩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었다. 그들은 하루경마 12경주중에 특정한 경주에 대하여, 경마전일부터 다양한 경로를 통하여 얻어낸 다양한 정보를 경마당일에 다시 확인을 한 후 베팅을 했고 적중을 해냈었다. 그들이 선택한 경주에 대한 적중률은 매우 높았었고, 어쩌다 한두 번의 적중실패를 해도 그다음 주의 경마에서는 반드시 그이상의 회복을 해냈었다. 종원은, 자신도 그들처럼 해낼 수 있는 일이라고 스스로를 굳게 믿었다. 물론 그런 일이 혼자서 해낼 수 있는 일은 아니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종원은 씁쓸한 미소를 짓고는 담배를 꺼내 피워 문다. 깔끔한 용모의 청년 둘이 도시락과 물병들을 안고 종원이 앉아있는 벤치로 다가오더니 흘낏 종원에게 고개를 까닥해보이고는 종원이 앉아있는 벤치의 빈 공간에 도시락과 물병을 내려놓고는 벤치를 가운데로 두고 양옆으로 쪼그려 앉는다. 종원은 살며시 옆으로 옮겨 앉음으로 그들이 식탁대용으로 사용하려는 벤치에 좀 더 여유로운 공간을 마련해준다.
"점심 안 들어요?"
하며 청년하나가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마움을 표시한다. 종원은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으로 화답을 대신한다. 다른 청년은 아직도 3경주의 결과에 대한 미련이 남아있는 듯 온갖 표기와 메모로 가득 차 있는 예상지를 펼쳐놓고 뚫어지게 내려다보더니
"어떻게 2번하고 7번이 들어 오냐?"
하고 탄식을 토해낸다. 종원에게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이던 청년이
"그러니까 경마지?"
하자 다른 청년은 다시
"복승배당 1355배 쌍승배당 7482배... 허! 돈 만들려면 이런 경주에 때렸어야 돈 되는 건데... 2번 7번이 들어오기로 짜놓은 경주로 다시 뛴다고 해도... 아무리 책을 다시 들여다봐도 2번 7번 못 사겠다."
하며 쓴 표정을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