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내려가자."
종원은 가방의 지퍼들을 다시 채우고 한쪽 끈을 쥐었다.
"요것들은 뭐다요?"
봉주가 붙박이장 안의 몇 벌의 옷들이 걸려있는 아래로 저마다 다른 메모지로 꼬리표들을 하고 무언가 가득 채워진 채 빽빽이 늘어져있는 쇼핑백들을 가리키더니 쪼그려 앉아 쇼핑백들을 들춰보기 시작했다. 종원은 그런 봉주를 만류하려다가 그만두었다. 자신도 그것들이 무언지 궁금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마동식에 대해 좀 더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봉주는 쇼핑백 안에 담긴 내용물들을 들쑤셔보다가
"이거 전부 압수했던 것들 같은디요? 개자식이 이런 것도 다 빼돌려 논 모양이요."
했다. 봉주의 말대로 그것들은 제각기 다른 포장지들에 쌓여 있었고 제각기 다른 숫자들과 간단명료한 단어들이 적혀있었다. 숫자들은 사건년월일이나 사건기록과 관계가 있는 것 같았고 단어들은 사건내용에 관한 것들 같았는데 그것들은 마동식의 필체일거라고 종원은 생각했다.
"이건 뽕아니요?"
봉주가 포장한곳을 찢어내고 보여준 것은 하얀 가루가 담긴 투명비닐봉지 였다.
"개새끼가 이런 것도 빼돌려 거래까지 하는 모양인디라?"
하고 포장지를 쫙 뜯어내려했다.
"뭐하려구?"
종원이 만류하기도 전에
"이거 내다팔면 얼마나 되는지 아요?"
하며 봉주는 벌써 포장지를 뜯어내고 있었다.
"손 대지마!"
종원이 명령이라도 내리듯 소리를 높였다. 봉주는 주춤하더니 뜨악한 표정으로 종원을 올려다보았다. 종원은 긴 숨을 내쉬며 어깨를 으쓱해보이고는 소리를 낮춰
"우린 우리 돈만 찾으러 왔지 뭘 훔치러 들어온 게 아니잖아?"
했다. 봉주는 종원을 올려다본 채 두 눈을 껌벅이다가 종원이 다시
"그리고 그런 걸 어디다 내다팔아? 그게 어떤 건지 알면서 그래?"
하자 이내
"허기사 우리가 벨짓을 다했어도 사람들 신세조지는 요따우 것에는 손 안댔지라!"
하며 멋쩍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종원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너 핸드폰 카메라기능 되지?"
하고 물었다. 봉주는 쪼그려 앉았던 몸을 일으키며
"예. 왜라? 이것들 찍어놀라고라?"
하고 물었다. 종원이
"이것들을 찍어두면..."
하는데 봉주가 얼른
"이걸 증거로 이 새끼 약점 잡아둘라고라?"
했다. 종원은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그럴 수도 있고..."
했다. 봉주는
"그랍시다. 언제 써먹더라도 써먹을 때가 있겄지라!"
하고 핸드폰을 꺼내 버튼을 이리저리 눌러대며
"내 핸드폰 화소가 높은 것이라 사진 잘 나오요!"
하고 자랑이라도 하듯 싱글거리더니, 포장을 찢어냈던 마약뿐 아니라 붙박이장에 빽빽하게 늘어져 있던 쇼핑백들을 몽땅 들어내 쇼핑백 안에 담긴 물건들을 죄다 꺼내 펼쳐놓고 포장지에 메모된 숫자들과 단어들이 잘 보일 수 있도록 하여 사진을 찍고 난 후, 내용물들을 다시 쇼핑백에 되담으며
"눈치 못채게 원래대로 놀까라?"
하고 종원을 보았다. 종원은 가볍게 고개를 저으며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을 것 같아. 어차피 돈이 없어진 걸 알면 누군가가 들어왔었다는 걸 알 테고."
했다. 봉주는
"하긴 그렇겄소."
하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쇼핑백들을 붙박이장 안에 아무렇게나 내던져 놓고 종원이 쥐고 있는 가방의 다른 한쪽 끈을 쥐었다.
"아래로 가져갈 거요?"
봉주가 물었다. 종원은 다시 고개를 저으며
"거기엔 네 식구들 눈이 많잖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아무래도 눈에 띄지 않는 게 좋을 거 같아."
했다. 봉주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과장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럼 어떡할라고라?"
하고 종원을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