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참을 달아나던 종원의 차가 다시 다른 모퉁이를 돌아서더니 한곳에서 급정거를 하고는 종원과 지숙이 황급히 차에서 내렸다.
"뛰어!"
종원이 소리를 지르면서 앞서 뛰자 지숙도 얼떨결에 그 뒤를 따라 뛰었다. 둘은 이내 다른 골목으로 달아났다. 둘이 한참을 달아나다 멈추어 선 곳은 각종각색의 차들이 주차되어있는 공영주차장이었다. 종원과 지숙은 한동안 허리를 꺾고 숨을 할딱여댔다. 
"어느 차가 마음에 들어?"
종원이 허리를 펴며 물었다. 지숙의 눈이 동그래졌다. 
"무슨 소리야?"
"마음에 드는 차를 고르라구."
종원이 다시 말했다.
"차를 훔치겠다는 거야?"
"난 훔치진 않아. 잠시 빌릴 뿐이야."
종원이 태연하게 말했다. 지숙은 다시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서 선택해! 붙잡히기 전에!"
종원이 소리를 높였다. 순간 지숙이 잠시 망설이는 표정을 짓더니 대뜸
"난 빨간색이 좋아."
했다. 종원이 히죽 웃어 보이며
"그럴 줄 알았어. 오케이!"
하고는 성큼성큼 빨간색의 외제차 앞으로 다가가더니 맥가이버나이프를 꺼내 빠른 손놀림으로 차문을 열고는 차안으로 들어가자 지숙도 얼른 차에 뒤따라 올랐다. 몇 차례 ''끼륵- 끼륵-'' 하고 비명을 내던 빨강외제차는 이내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종원과 지숙이 탄 빨강외제차가 조금 전에 종원이 엔진 을 켜둔 채로 아무렇게나 내버려두었던 차의 곁을 스쳐 가는데 그제야 요란스레 사이렌을 울리며 경찰차가 도착을 했다. 경찰들은 황급히 차에서 내리더니 총을 꺼내들고 내버려진 차 곁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이내 차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알아내고는 서로 마주보며 낭패의 표정을 지었다. 빨강외제차에 탄 종원과 지숙은 유유히 그런 모습을 뒤로 하고 어둠 속으로 달아났다.
"어때? 재밌잖아?"
하고 종원이 낄낄거리자 지숙은 한참동안 입술을 깨물고만 있더니 흘낏 종원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종원이 만족한 표정으로 다시 
"그럴 줄 알았어!"
하고는
"렛츠 고우!"
하며 소리를 질러대고 카셋트의 버튼을 눌렀다. 한참을 달리던 종원의 차는 도심을 벗어나 외각의 한적한 도로의 공중전화 박스 앞에서 멈춰 섰다. 종원은 공중전화 박스 안으로 들어가 김팔봉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원입니다... 규태형을 만났습니다."
김팔봉은 사우나 밀실에서 반라의 마사지 걸들에게 마사지를 받고 있었고 그 곁에서 오명석이 대신 핸드폰을 받으며 서있었다.
"규태형이 당했던 것 같습니다."
"당하다니? 누구한테?"
"마동식이란 놈입니다."
종원이 말했다. 오명석의 소리가 높아졌다.
"마동식이 누구야?"
"설명을 하자면 좀 깁니다."
"규태를 보고 직접 찾아와서 얘기 하라구해!"
오명석이 다시 소리를 높였다. 종원은 잠시 망설이다가 긴 숨을 내쉬며
"규태형은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하고 대답했다. 순간 오명석의 미간이 움찔하며
"이 자식들이 지금 무슨 수작을 하고 있어?"
하고 소리를 높이는데 김팔봉이 엎드린 채 고개를 돌리고 손짓을 했다. 오명석이 고개를 숙여 보이고 조심스레 핸드폰을 김팔봉에게 건네주었다. 김팔봉이 전화를 건네받고 나직한 음성으로
"내게로 돌아오지 않으면 수습하기가 더 어려워져... 저쪽에서 네 명이나 줄을 달고 들어갔는데 손 놓고 있을 것 같아? 어쨌든 규태는 내 식구야. 벌을 내려도 내 손으로 내려야지. 다른 놈들에게 칼 맞게 할 순 없어!"
했다. 종원이 다시 한참동안 망설이더니  
"저도...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하고는 그대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공중전화 박스의 수화기가 대롱대롱 매달린 채 ''띠-띠-'' 하는 소리만 냈다. 김팔봉은 천천히 핸드폰폴더를 닫으며 ''끙!'' 하고 나직이 신음 같은 한숨을 뱉어내며 오명석에게 수화기를 다시 건네주었다. 오명석이 핸드폰을 건네받으며 조심스레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김팔봉이 자세를 고쳐 바로 누워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마사지 걸들이 흐트러진 바쓰타올을 추스렸다. 김팔봉은 대답대신 눈을 지그시 감고 다시 나직이 신음 같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