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시장에서는 이미 9경주에 출전할 경주마들에 기승한 기수들이 관중들의 격려와 야유가 뒤섞인 소리들을 들어가며 고개를 숙인 채 예시장의 작은 트랙을 돌고 있었다. 손영무는 예시장의 난간을 삥 둘러싼 채 트랙을 내려다보고 서있는 사람들을 헤집고 계단을 내려가 한구석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그의 앞을 지나쳐가는 경주마들을 바라보았다. 9경주는 국산마 2군의 1800M 경주였기에 출전한 경주마들은 저마다 1군의 승군을 앞둔 스피드와 힘에 있어서 한창 능력이 향상되고 있는 장래성이 돋보이는 우수한 경주마들이었다. 그중 몇 두의 경주마는 벌써 크고 작은 대상경주들에서 우승과 준우승을 해낸 관록도 가지고 있었으며 서로간의 경주전적에서도 한번씩 이기고 진 적이 있었던 능력들이 엇비슷한 경주마들이었고, 경주전개예상에 있어서도 선행력과 선입력과 추입력이 제각기 탁월한 경주마들로 편성이 짜여져 경승선 직전에 이르러서야 박빙의 승부가 예상되는 경주이기도 했다. 손영무도 이미 경주마들의 경주능력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는 터였기에 그저 경주마들의 잘 다듬어진 몸매와 경쾌한 걸음걸이와 어느 때보다 승부의지가 강해보이는 기승기수들의 표정을 살펴보는 것만으로 만족을 하고 있었다.
"어떻게 오늘 한 경주도 못 맞춰? 경마를 할 줄 알긴 아는 거야?"
이혜진의 비아냥거리던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손영무는 씁쓰레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이혜진의 힐난처럼 오늘 경주도 완패하기는 했다. 아니 오늘 경주뿐이 아니라 어제의 경주에서도 또 지난주의 마지막경주에서도 적중에 실패를 했다. 손영무는 한참동안을 두 눈을 껌벅이며 그이유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이혜진때문이라는 결론을 얻어내고 고개를 끄덕였다. 장길수를 따라 처음 경마장을 찾았던 날 첫 베팅에서 1260배의 배당이 형성된 경주를 맞췄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경마의 두 번째 베팅에서 다시 610배를 맞춘 이후 손영무는 줄곧 혼자서 분석하고 추리하고 경주전개예상을 하고 꼭 베팅할 경주에만 베팅을 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어쩌다 한두 경주의 실패를 제외하고는 늘 적중을 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혜진을 2년 만에 경마장에서 다시 만난 이후부터는 이상할 정도로 분석과 추리와 경주전개예상이 흔들렸고 경주전개의 예상과 결과에 대한 확신도 없는 경주까지 베팅을 함으로써 그만큼 적중률도 떨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특히 오늘처럼 이혜진이 적중실패를 할 때마다 실망을 넘어서 짜증을 부리는 것들이 신경이 쓰였고 투정을 지나쳐 비아냥거리는 투의 말들을 내뱉을 때 마다 꼭 맞춰 보이고 싶은 어리석은 욕심에만 이끌려 매 경주 때마다 적중시켰을 경우의 배당의 유혹에 빠져들어 분별력 있는 베팅을 하지 못했던 것이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는 생각을 했다. 손영무는 그의 앞을 지나쳐 경주로를 향해 지하통로를 빠져나가고 있는 경주마와 기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번 9경주에 자신의 경마에 대한 모든 것을 걸어보기로 작정했다. 9경주의 출주경주마들의 경주능력에 대한 분석은 이미 끝나 있었고 경주전개예상도 충분히 예상되었다. 손영무는 비록 외곽게이트에 있지만 탁월한 선행력에 뒷심까지 가지고 있는 8번마와, 인코스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결승선상에서 놀라운 추입능력을 보여 온 2번마의 동반입상을 예상하고, 아직 경주마들이 경주로에 들어서기 전이라 마권구매창구 앞이 한산한 시간을 이용해 창구를 돌며 남아있던 예치권들을 모두 2, 8의 복승식마권으로 구매를 했는데 모두 21장이나 되었으니 210만원을 베팅한 셈이었다. 손영무는 마권발매가 마감이 되고나서야 이혜진의 곁으로 돌아가 그녀에게 구매한 마권들을 건네주었다. 이혜진은 21장의 마권을 세어보고 배당판을 살피더니 두 눈이 동그래져
"2, 8이 얼마야? 14배나 되네?"
하고는 손영무를 보고   
"사람들이 3,6 아니면 3,4라고 하던데?"
하며 이내 미간을 찌푸렸다. 손영무는 잠시 두 눈을 껌벅이고는
"순발력과 선행능력이 뛰어난 말들이 몇 두 있긴 하지만 8번마가 게이트가 비록 바깥쪽이라 불리해보이긴 해도 기승기수가 순발력과 추진력을 끌어내는데 탁월한 기수이기 때문에 다른 선행마들보다 조금 더 앞서 나갈 수 있어. 8번마가 앞서나가서 경주를 주도해낼 수만 있다면 결코 끈기와 힘에서 밀리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버텨낼 수 있어서 이경주의 강력한 우승마야. 그리고 2번마는 추입력이 엇비슷한 말들이 몇 두 있지만 인코스에 배정 받아서 그렇게 무리하지 않아도 곱게 자리를 잡고 따라 올 수 있어. 4코너까지 중간순위정도만 유지하고 경주전개를 해줘도 결승선상에서는 비축해둔 힘을 다 쏟아낼 수 있어. 기승한 기수도 추입마에 기승했을 때 더 뛰어난 성적을 보여 온 기수라 인마호흡에 있어서도 일체감이 있고. 결국 이번 경주는 같은 능력의 경주마들이라면 기수들의 기승술에 의존해야 하는 기수들과 경주마들의 인마일체감의 승부라고 보는 거야. 아마 결승선에서는 8번마와 2번마의 코끝차이 승부가 날거야."
하고 느릿느릿한 어투로  설명을 했다. 이혜진은 미덥지 않은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하고는
"그렇게 잘 알면서 여태 왜 못 맞췄어?"
하고는 입술을 삐죽했다. 손영무는 맥이 풀리는 느낌으로 나직이 긴 숨을 내쉬며 경주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발주대에 대기하고 있던 경주마들이 신호음과 함께 일제히 발주대를 박차고 뛰쳐나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