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영무는 다시 장길수를 보았다. 장길수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제자리 뛰기를 하며 트랙을 달려오는 말들을 향해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조금 전보다 더 큰 함성들이 들려왔다. 손영무는 다시 뒤를 돌아보았다. 두 손을 치켜드는 사람들, 책을 내던지는 사람들, 트랙을 향해 소리치는 사람들로 아수라장이었다. 트랙 쪽에서 `우두두` 하는 말발굽소리와 알아들을 수 없는 거친 숨소리와 기합 같은 소리들이 휙 하고 지나쳐 갔다. 일순간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정지한 듯 서있더니 스르르 자리들에 주저앉았고 더러는 천천히 자리를 떠나기도 했다. 손영무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다시 트랙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나 이미 말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대형화면에서는 결승선을 통과하는 말들의 느린 모습이 보여지고 있었다.
"쓰발! 34배네. 배당 좋네."
장길수가 호주머니에 꽂아두었던 티켓을 꺼내들고 내려다보며 화난소리로 중얼거렸다. 손영무는 장길수가 선택한 말들이 등수에 들지 못했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았다. 그냥 넋 나간 사람처럼 망연히 대형화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형화면에서는 대형화면 옆에 세워진 커다란 게시판을 잠시 보여주었지만 아직 순위 안에 들아 온 말 번호들은 하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다시 대형화면에서는 조금 전의 경주 장면들이 다시 보여지기 시작했다. 손영무는 조금 전과는 다른 기분으로 그 모습들을 지켜보았다.
"이게 경마구나..."

손영무는 장길수를 따라 처음으로 경마장을 가게 되었던 날을 떠올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보았던 경마장의 모습과 예시장의 모습과 경주로와 첫 경주와 사람들의 모습들을 떠올렸다. 그때의 생각을 하면서 한참을 걸었는데도 경마장은 아직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인다. 아직도 도로는 꽉 막힌 채 차들은 주차장처럼 도로 한가운데서 멈추어 매연들만 내뿜고 있었다. 손영무는 식당 옆길로 나있는 샛길로 들어선다. 흘낏 손목시계를 본다. 약속했던 시간이 훨씬 지났다. 기다리겠지.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걸음을 재촉한다. 비교적 약속시간은 잘 지키는 편이었음에도 오늘은 너무 늦는다는 생각을 한다.

손영무는 비로소 말을 경주마라고 하고 트랙을 경주로라고 하는 것을 배웠다. 발주대, 착순게시대, 관람대라는 용어와, 예상지와 경마에도 전문가가 있어 그 사람들을 경마예상전문위원이라고 하는 것을 알았다. 장길수가 호주머니에 꽂고 있었던 티켓을 마권이라고 하고, 돈을 거는 것을 베팅이라고 하는 것도, 경마에 단승식과 복승시과 연승식이 있다는 것도 알았다.
"정말 이렇게 가르쳐 줘서 진짜 손형하고 원수사이 되는 거 아냐? 나 손형하고 원수사이 되기 싫은데?"
장길수는 너스레를 떨었다. 8경주가 끝날 쯤에 장길수는 가지고 있었던 돈을 다 잃었다.
"쓰발! 역시 경마는 어려운 거구먼! 오늘 카드도 못하겠구만?"
떨떠름한 표정으로 예시장 한곳에 앉아 9경주에 출전할 경주마들을 바라보며 장길수가 한숨과 함께 내뱉었다.
"돈 빌려줘?"
손영무가 장길수를 보며 물었다. 장길수는 멋쩍은 표정을 지었다.
"무리한 것도 아닌데 벌써 올인 났네."
하더니
"얼마있어?"
하고 손영무를 흘낏 보며 물었다.
"한 이십만원 될려나?"
"그래? 그럼 십만원만 빌려 줄 거야? 잘되면 바로 갚고 잘 안되더라도 월요일이나 화요일까지는 갚을 수 있을 거야."
"갚을 거 생각 말고 한번 잘 적중시켜봐!"
"적중? 손형 벌써부터 경마용어 풍기는데?"
"내가?"
"적중이란 말 했잖아?"
"장형이 그렇게 말해 줬잖아?"
"그래. 가르쳐줬지만 바로 적응하는 사람은 드믈 거든? 손형 경마에 타고난 재주 있는 거 아냐?"
"그런 사람이 어딨어?"
"아냐. 경마가 논리와 추론에 의한 겜블이지만 결국은 선택을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는 감각의 게임이라구. 손형도 한번 찍어보지?"
"내가 뭘 안다구?"
"아냐. 한번 해봐!"
장길수가 손영무를 부추기지 않았어도 손영무는 한번 베팅을 해볼까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만 장길수가 자신을 도박 같은 것에 기대를 거는 인물이라고 생각할까봐 티를 내지 못하고 있다가 장길수가 자꾸 유혹을 하는 바람에
"그럼 한번 해볼까?"
하며 멋쩍은 미소를 지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