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을 닫다니?"
손영무가 다시 눈을 껌벅이며 물었다. 장길수는 담배를 길게 빨아들이더니 `후-`하고 신경질적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냈다.
"개새끼들이 튀었어."
"튀다니? 누가?"
"사장, 전무, 이사, 본부장이라는 것들이 모두 마누라에다 처남에다 사촌까지 한 집안 식구놈들 아냐? 일가족이 작정을 하고 돈 끌어들이고서 빈껍데기만 남겨놓고 투자자들 돈 모두 빼돌려 달아난 거지 뭐."
"투자자들 돈을 빼돌려? 그 많은 돈을?"
"말이 투자지 애초부터 사기를 치려고 작정을 한거라니까? 리츠형 투자 좋아하네. 전에 유행했던 파이넨스하고 똑같은 수법을 써먹은 거지 뭐."
"그럼 투자자들 돈은?"
"말했잖아? 개자식들이 다 빼돌려서 날랐다고?"
"그럼 회사엔 아무도 없는 거야?"
"아무것도 모르고 일찍 출근했던 여사원 몇 명만 사람들한테 붙잡혀 봉변을 당하고 있지 뭐."
"그럼 우린 어떻게 되는 거야?"
손영무가 여전히 사태파악을 못한 채 더듬대며 물었다.
"졸지에 실업자 된 거지 어떻게 돼?"
장길수가 다시 신경질적으로 담배연기를 뱉어냈다. 손영무는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얼마 만에 얻어 낸 직장인데...?"
"조금 있으면 지사직원들하고 지사에 투자를 했던 투자자들까지 몰려들 온다니까 여기 있어봐야 봉변만 당할게 뻔하다구! 빨리 여기서 빠져나가는 게 상책이라구!"
장길수가 담배를 비벼 껐다. 손영무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회사 안으로 들어가 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그냥 물러나야 하는 거야? 여기 취직하느라고 비싼 술까지 사주고 아직 월급은 한 푼도 못 받았는데?"
"괜히 어물거리고 있다가 경찰서에나 불려 다니고 지사직원들하고 투자자들한테 봉변이나 당하고 싶어?"
"나중에 문제 생기면 더 복잡해지잖아?"
"복잡해질 게 뭐있어? 우리가 한 일이 뭐있어서? 나중에 분위기 가라앉고 나면 그때 가서 우린 그저 아무 영문도 모르고 출퇴근 한 죄 밖에 없다고 진술하면 돼. 손형 말대로 아직 월급 한 푼 못 받았는데 따지고 보면 우리도 피해자지 뭐."
장길수는 머뭇거리는 손영무를 끌고 앞서고 손영무는 주춤거리며 끌려갔다. 엘리베이터 쪽에서 다시 한 무리의 사람들이 씩씩대며 몰려들었고 계단 쪽에서도 아우성소리와 함께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장길수와 손영무가 그들 틈을 헤집고 겨우 빠져나갔다. 회사 건물을 나온 장길수와 손영무는 허탈해진 표정으로 회사가 입주해 있었던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손영무씬 이제 뭐 할 거야?"
장길수가 물었다. 손영무는 장길수의 질문이 지금당장을 뜻하는 것인지 다른 일자리를 말하는 것인지를 몰라 선뜻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글쎄... 장형은?"
"사우나에 가서 땀이나 빼고 찬물에 머리 좀 처박고 생각해봐야지."
손영무가 건성으로 끄덕였다.
"그것도 괜찮겠네..."
"집으로 들어갈 거야?"
장길수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표정으로 물었다. 손영무는 다시 건성으로
"그래. 잠이나 좀 자야겠어. 한숨 자고 나면 좋은 생각이 떠오를지도 모르잖아?"
하고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장길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나지겠지 뭐."
"그래..."
두 사람은 서로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악수를 나누고 제각기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손영무가 몇 걸음 내딛는데 장길수가
"손형! 잠깐만!"
하고 손영무를 불렀다. 손영무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렸다. 장길수는 다시 손영무에게로 다가오더니 불쑥
"손형 돈 얼마나 있어?"
하고 물었다.
"지금?"
"그래. 지금."
"글쎄 한 십만 원 쯤 될려나? 왜?"
"그래? 그럼 나랑 같이 가자. 좋은 생각이 났어."
"좋은 생각?"
"글쎄 따라 와봐."
장길수는 갑자기 걸음을 빨리하며 앞서갔고 영문도 모르는 손영무는 허둥대며 장길수의 뒤를 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