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연실의 공기가 점점 혼탁해지기 시작했다. 제각각의 예상지들을 팔짱에 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어 담배를 피워대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한가하고 여유 있어보였던 흡연실 안은, 금세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낙오되고 버림받은 부랑자들의 수용소라도 되는 양 그저 발붙일 곳이면 족하다는 듯 빼곡히 들어선 사람들이 제각기 다른 초라한 모습들로 서로의 시선들을 피하며 연신 담배를 빨아들이고 있다. 홍성만은 심한 역겨움으로 구토증을 느낀다. 담배를 비벼 끈다. 순간 아내가 유리벽 밖에서 저주받은 공간에 갇힌 채 담배연기를 토해내고 있는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어쩌면 측은한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구제불능이라고 고개를 가로 젓고 있을지도...
홍성만은 차마 고개를 들고 유리벽 밖을 바라볼 수가 없다. 정말 아내가 유리벽 밖에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다. 갑자기 목뒤가 경직된 듯 굳어져 고개조차 들 수 없게 되고 등줄기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만 같다. 홍성만은 담배를 비벼 끈 손으로 눈꺼풀을 쓸어내리다가 손가락 끝에서 묻어난 담뱃진 냄새에 다시 한번 심한 구토증을 느낀다. 눈을 꼭 감는다. 눈을 감아버리면 자신이 아무것도 볼 수 없듯이 아무도 자신의 초라한 모습을 볼 수없기를 바란다. 이 저주받은 공간에서 빨리 나가고 싶다. 그러나 걸음을 떼려 해도 두발이 굳어져 움직일 수가 없다. 온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음악과 함께 제2경주에 출전하는 경주마들과 기수들의 소개방송이 들려온다. 홍성만은 나직이 신음 같은 한숨을 몰아 내쉰 후 감았던 눈을 뜨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유리벽 밖을 둘러본다. 다행히 아내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하긴 아내가 그토록 경멸을 했던 이런 곳까지 찾아 올 까닭이 없지. 홍성만은 씁쓸한 미소를 짓는다. 신음 같은 안도의 한숨이 함께 묻어 나온다. 허우적거리듯 느릿한 걸음으로 유리문 쪽으로 걸어가서 유리문을 밀치고 조금 전보다 더욱 혼탁해진 흡연실을 빠져나간다.

"다른 취미생활 즐기는 데는 어데 돈 안 들어가요?"
김달오와 조용철은 그때까지도 중독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거이 무신 취미생활이여? 놀음이제? 놀음 중에서도 아조 지독한 중독에 걸리는 놀음이여."
김달오가 다시 언성을 높이자 조용철도 지지 않고 열을 올린다.
"허구헌날 몸베레가믄서 밤샘 고스톱을 치는 것도 아이고 전 재산 걸고 벌이는 도박판도 아인데 토요일 일요일 날 경마장 와서 말 뛰는 것도 보고 쪼맨씩 베팅해가믄서 즐기는 기 무신 그리 나쁜 일이라꼬 중독중독 해쌌능교? 중독이란 말 아무데나 쓰지 마소. 매일 마다 온갖 정보 다 수집해서 분석하고 연구해서 주식투자를 하는 사람들한테는 와 주식중독자라꼬 안하요? 주말마다 축구장이나 야구장을 찾는 사람들한테 축구나 야구중독자라꼬 하는 말 한번도 못 들어봤소. 등산을 즐기는 사람들한테는 억수로 좋은 취미가졌다꼬 산악인이라꼬 하믄서 아무도 등산중독이 걸렸다꼬 안합디다. 그란데 와 토요일 일요일에 경마장을 찾는 사람들한테는 모두 경마중독 걸린 것 맨치로 얘기하능교?"
그렇게 말하는 데야 김달오도 달리 반론할 말이 없다는 듯 `쩝!`하고 입맛을 다신다. 조용철은 김달오가 가뜩이나 작은 눈만 껌벅일 뿐 반박을 못하자 신이 나서 더욱 열을 올린다.
"골 때리는 기 마사횐기라요. 매주 마다 스무 번도 넘는 경주를 벌이면서도 경마중독에 걸리지 말라꼬 하는 기 말이 되능교? 지들이 판 다 벌여놓고 많이들 오셔서 판을 즐기소 하고 떠들어 대놓고, 막상 판을 즐기려고 경마장을 찾아 온 사람들한테 경마중독이 어떻고 하면서 경마중독에 걸린 사람들을 상담도 해주고 치료도 해준다꼬 떠들어대는 기요? 정 경마중독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걱정되먼 다른 시민단체 같은 곳에서 나서서 치료를 하게 하도록 후원을 하든지 해야제 와 지들이 병주고 약주고 다 설쳐대능교? 경마가 진짜로 중독에 걸리고 나쁜 기라먼 아예 경마자체를 없애뿌러야제. 나도 경마 안 열리먼 경마장 찾아올 일 없소. 안 그라요 홍교수?"
하고 조용철은 자신의 말에 동조를 해주기를 바라는 듯 막 흡연실을 나서서 자신들에게 다가오고 있는 홍성만을 바라보다가 홍성만의 넋 나간 듯한 모습을 보고 화들짝 놀란다.
"와 그라요? 어데 아프요?"
조용철이 놀란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자 김달오와 이장수, 주영호가 홍성만에게로 시선을 돌리더니 역시 모두의 눈이 휘 동그래진다.
"얼레? 담배 피우러 들어갔던 사람이 갑자기 와 이리 된겨?"
하며 이장수가 황급히 다가와 홍성만을 부축하듯 어깨를 감싼다. 홍성만은 흐느적거리는 걸음으로 몸을 채 가누지도 못한 채 가뜩이나 창백해진 표정으로 퀭하니 패인 두 눈을 껌벅이며 모두를 바라보고 힘없는 미소를 지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