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말산업은 경제입니다.
  • 말산업은 문화입니다.
  • 말산업은 건강입니다.

대한민국 을의 상징, 말산업 루저 ‘차밍걸’의 아름다운 퇴장

입력 : 2013.10.04 11:27


은퇴를 하면서 더욱 아름다운 향기를 발산하는 경주마가 있다. ‘차밍걸’(8세 암말)이 그 주인공이다. ‘차밍걸’은 9월28일 과천의 서울경마공원서 제10경주로 펼쳐진 1800레이스에 생애 101번 째 경주에 단짝 유미라선수(여)와 함께 출전하여 영광의 레이스를 펼치고 은퇴했다. ‘차밍걸’은 14마리의 출전마 중 12위로 출발했다. 경주 중반 9위까지 치고 올라오며 이변에 대한 기대감을 고조시켰으나, 결승선 직선주로에서 뒷심발휘에 실패, 아쉽게 최종 12위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경주 우승마는 박태종 선수와 호릅을 맞춘 ‘대싱디바’였다.

경주 직후에는 팬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 ‘차밍걸’의 은퇴식이 열렸다. 이날 은퇴식은 ‘차밍걸’과 경마팬들의 포토타임이 마련돼 위대한 똥말과의 추억을 간직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차밍걸’과 동고동락한 변영남 마주, 최영주 감독, 유미라 선수에게는 공로패도 수여되었다.

‘차밍걸’의 꼴찌마 삶은 1등이나 甲의 위치의 설 수 없어도 묵묵히 주어진 자리에서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해내는 보통 서민의 삶에 비유되면서, 훈훈한 감동을 선사해왔다. 첫 인상이 좋아 ‘차밍걸’이라는 이름이 지어진 이 경주마는 410kg의 왜소한 체격으로, 2008년 1월 데뷔이후 소위 ‘3류’ 들이 겨루는 하급레이스인 4군, 5군 경주에서 연전연패를 거듭했다. 지금까지 거둔 최고 성적은 3등 8번이 고작이다.

뛰어도 뛰어도 단 한번도 1등을 해보지 못한 경주마! 무려 101번씩이나 경주에 출전했으면서도 단 한 번도 우승을 하지 못한 비루먹은 경주마! 경마 현장에서는 이런 경주마를 소위 ‘똥말’이라고 한다. ‘똥말’ 중의 ‘똥말’ 루저 중의 루저 ‘차밍걸’은 이제 새로운 마생을 시작한다.

‘차밍걸’의 주인인 변영남(70) 마주는 아직 경주마로 활동할 수 있는 여력은 남아있지만, 8세의 고령인데다 새로운 인생을 열어주기 위해 은퇴를 결심하게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경마는 순위를 다투는 스포츠다. 1등에게는 항상 스포트라이트가 비춰지지만 그 이하는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하지만 경마에서 1등을 할 수 있는 확률은 대략 10% 내외이다. 모든 경주에서 1등은 단 한 마리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1등을 못하게 된다. 물론 아주 희귀하게 공동 우승이 발생하기도 한다.

정든 경주로를 떠난 ‘차밍걸’은 경기도 화성시 궁평목장에서 제2의 마(馬)생을 시작했다. 이 곳에서 ‘차밍걸’은 승마 선수를 위한 ‘엘리트 승용마’로 새로운 도약을 한다. 숱한 이야기를 남기고 경주로를 떠난 ‘차밍걸’을 이제 ‘전국 체전’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경마팬들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차밍걸’은 변영남 마주가 채권 대신 떠안은 말이다. 체구도 작다. 출생도, 스펙도 보잘 것 없다. 하지만, ‘차밍걸’이 부진한 성적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른 말보다 빠른 회복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보통 경주마는 1개월 보름 만에 한번 정도 출전하지만, 차밍걸은 1개월에 두 번 경주에 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른 경주마보다 1.5~2배 정도 더 일을 많이 하는 셈이다. 남들 8시간 일할 때 12시간이나 16시간 일해서 먹고사는 서민들의 삶과 닮은꼴이다.

류태정(46) 궁평목장 대표는 “경주마로 능력은 부족해도 열심히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차밍걸이 전국체전 등 승마 대회에 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8세는 경주마로는 노쇠하지만 승용마로는 현역으로 뛸 수 있는 나이다.

1등만이 인정받고, 1등만이 가치 있고, 1등이 아닌 나머지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여겨지는 사회 풍조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삶에서 정작 중요한 것들은 숫자로 매길 수 없다. 세상에는 1등보다 더 아름다운 꼴찌가 존재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인생에서 최고보다 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작 성 자 : 김문영 kmyoung@krj.co.kr







로그인
PC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