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은 오르내리고 말은 질주하고 슬롯머신은 잭팟을 터뜨린다. 재미교포 유세련은 주식과 경마에도 남다른 애정이 있지만 슬롯머신은 엎드려 절할 만큼 좋아했다. 정선 카지노에 룸을 잡아놓고 날마다 하고 싶은 게 슬롯머신이었다. 여체가 댕기면, 문자 한 통에 바로 달려올 여자는 20대에서 50대까지, 40킬로에서 80킬로까지 족히 두 타스는 될 것이었다. 허나 돈도 돈이고 서울에서 해야 할 일이 산더미였다. 산더미란 주로 어수룩한 물주를 꾀이는 일이고 돈푼깨나 있는 새 여자를 몸으로 후리는 일이었다. 사실 크게 한 탕 하면 그 모든 소소한 작업들은 안녕이겠지만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당분간은 작은 물고기나마 계속 낚을 수밖에 없었다. 풀칠이란, 밥 먹고 15시까지는 주식을 사고팔고 15시 이후에는 불법 영업장에서 슬롯머신을 하는 일이었다. 슬롯머신은 잭팟을 잡는 재미로 하는 건데, 잭팟이란 실로 머릿속에 오르가슴이 펑 터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었다. 극도의 쾌락이 주어지기에 그 맛을 한 번 본 자는 좀체 헤어날 수 없게 되어 있었다. 정선의 슬롯머신은 3억도 터뜨리고 7억도 터뜨리지만 동네 불법 영업장은 원화 250만 원이 한계였다. 문제는 그게 수시로 터진다는 것이었다. 일 년에 한 번 어느 놈이나 년에게 안길지 모르는 몇 억이냐, 다섯 시에도 터지고 아홉 시에도 터지고 새벽 한 시에도 터지는 250만 원이냐, 여러분은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후자는 특히 서울 곳곳에 위치하고 있고 주위에는 술집과 모텔이 즐비하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라.
마돈걸은 슬롯머신에 선입관을 갖고 있었다. 노름꾼들의 고함소리와 음흉한 눈빛과 금방이라도 폭력과 신체 절단이 일어날 것 같은 무서운 곳. 물론 대한민국의 슬롯머신 장은 아리따운 아가씨가 물수건과 원두커피를 제공하고 기계 돌아가는 정겨운 소리 외에는 오직 정적만을 지향하는 그야 말로 특급 호텔 로비처럼 청결한 곳이었다. 마돈걸은 거기가 청결하건 아니건 그런 건 상관없었고 그런 곳에 드나드는 남자는 일단 경계하고 있었다. 이 사실을 알기에 유세련은 마돈걸에게 슬롯의 슬, 빠찡코의 빠 자도 꺼내지 않고 점잖게 모 기업의 주당 순자산이 어떻고 시장 다변화 전략의 성공여부 따위를 읊어대 왔던 것이다.
마돈걸은 그런 소린 건성으로 듣고 오늘은 한 번 원 없이 몸을 풀어보리라 작정하고 있었다. 마돈걸은 남자가 짐승이 되어 자신을 짐승으로 다뤄줬으면 하는 욕구에 한 치의 부끄러움도 느끼지 않고 있었다. 그것이 나중에 사랑이니 뭐니 남자가 엉뚱한 소리를 꺼내지 않게 하는 하나의 방법이기도 했다. 서울에서 여자의 육체는 너무도 흔한 것이나 그 흔한 걸 꿈만 꿔야 하는 게 대다수 남자들이다. 유세련은 그 점에서 운이 좋았다. 뛰어난 몸매의 마돈걸이 오늘 작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음 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