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우리는 마돈걸이 경마장에 나타나면, 그 뛰어난 자태와 패션으로 남정네들이 넋을 잃을뿐더러 여자들의 질시까지 집중적으로 받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무비스타인가 싶어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자들까지 있었던 것이다.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한가한 오후 일식집에서 사케를 마시고 있는 마돈걸의 몸매와, 몸매를 감싸고 있는 패션 감각에 내심 감탄하였다. 과천 경마장에 오는 여성 경마팬들이 모두 그녀처럼 이렇게 아름답게 차려입으면 얼마나 보기 좋을까 생각해보았다. 사실 오페라 극장에 가듯 경마장에 옷을 차려입고 간다면, 보기 좋은 걸 떠나 경마를 보는 사회의 시각이 지금과는 많이 달라질 거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사행성이니 뭐니 그런 말조차 함부로 붙이지 못할 것 같았다. 복장은 곧 경마를 대하는 자세 및 사고방식과 연관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껏 차려입은 남녀가 관중석을 가득 메울 때, 경주마조차 자신이 존중받는 느낌에 사로잡혀 더더욱 힘차게 달리지 않을까 생각해보는 것이다.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마돈걸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뮤지컬 영화 ‘마이 페어 레이디’가 생각났다. 영화는, 꽃 파는 가난뱅이 아가씨 오드리 헵번이 한 중년 신사에게 발음과 예절 훈련을 받고 상류층 여인으로 탈바꿈한다는 내용으로, 아름다운 음악과 멋진 춤이 인상적이었다. 영화에는 경마장이 나오는데 남성들은 턱시도우, 여성들은 챙 넓은 모자에 섬세하고 화려한 드레스를 걸치고는 경주를 즐기는 틈틈이 교양 있는 말씨로 서로의 안부를 여쭙는다. 경마장에 나타난 오드리 헵번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상류층 부인들의 허세와 그녀의 순진성이 대조되는 장면도 흥미롭다. 당시의 이들 여성 경마팬들의 옷은 언뜻 보기도 정말 대단하다. 오드리 헵번이 입은 옷은 현재 영화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예전보다 훨씬 다양하고 개성 있는 패션을 구가하고 있어 그녀들이 마음만 먹으면 과천 경마장은 순식간에 화려한 화원으로 물결칠 것이다. 숙녀들의 이러한 참여에 맞춰 신사양반들도 멋진 옷으로 차려입고 와준다면 서로가 서로를 보는 눈에 공경과 다정함과 호감이 듬뿍 담기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당나귀 신사 백팔만은 그런 영화 같은 그림을 머리에 떠올려보며, 요번주 토요일엔 승부를 떠나 최고로 멋지게 차려입고 과천에 나타나리라 작정하였다. 멋진 신사이다 보니 행동도 여유 있고 품위 있게, 해서 경주마 선택도 좀 더 객관적으로 냉정하게 따져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물론 그의 옆에는 눈부시게 차려입은 마돈걸의 아름다운 미소가 함께 해주어야 할 것이었다. (다음주에)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