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대(賤待)
윤 한 로

졸참새 서너 마리
삐뚜름 날아오르고
담배창고 막지붕너머
남빛 하늘 곱고나

벌건 대낮
돼지 멱따는 소리
산내끼에 *둥구재벼설랑
동네방네 떠나가라
예미,
흙투뱅이 불알 출럭거리메
온갖 거이
먹고 마시고 싸고
지지고 볶고 자시두마

밥숟갈 동가리 빠진
새참 돌우물
물맛만 맑고 쓰거운데
곁을 주는가
왠녀르 나무인지
긴 머리 몇 발 풀어제치고 섰다

참고
* 둥구재비다 : 백석 시인 시 ‘연자간’에 나오는 구절을 좀 빌렸다. 돼지 따위 짐승을 물동이를 안은 것처럼 둥그렇게 잡거나 묶어놓은 모양을 뜻한다.

시작 메모
올 여름에 시골을 갔다오다가 담배창고를 지나쳤다. 우둘투둘한 흙벽에 무성한 후박나무 가지가 짓쳐있고 찢어질 듯 매미가 우는데 녹슨 상철 지붕 위 파란 하늘 하며, 아직도 저렇게 남아 있구나, 기가막히게 아름다웠다. 강촌 여름 마을을 꼭 쓰고 싶었다. 흔해 빠진 참새 새끼들, 맑고 깊은 우물, 돼지 멱따는 소리까지 벌건 대낮을 흐벅지게 그리고 싶었다. 그러다가 문득 그 속에서 천대 받는 이들한테로 생각이 미쳤다. 밑바닥에서 짓밟혀 뺏길 것 한 움큼도 없는 그이들은 오히려 얼마나 자유스럽고 자연스러운가. 천지사방 지멋대로다. 다 까발렸으니 도통 걸리 게 없다. 만일 어설픈 졸작 시 몇 줄로 그이들을 잘못 알고 아프게 했다면 용서를 빈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