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샅길
윤한로

절룩,
때꼬장 얼굴로
들어서는 고샅길

하루 해
짧다

잘새 떼거지들
벌써부터 설치누나

뒤안 고욤나무 꼭대기께
오늘도 거지별
뉘집 명오(明悟) 밥 한술
얻어걸친 듯

참말로
맑은데

어스름 저녁답
오줌보는 부풀고

장구머리 작은형이
자꾸만 무서워져


시작 노트 : 우리 천주교 시골 공소에는 일 년에 두 차례씩 봄과 가을로 신부님들께서 판공성사를 주러 오신다. 성사를 다 주고 나면 먼저 시장하신 신부님께 밥을 차려드리는데, 그 밥을 잡숫고 나서 상을 물리면 교우들이 기다렸다가 그릇에 남긴 밥을 나눠 먹는다. 신부님이 남겨준 이 밥은 명오(明悟) 밥이라고 해서, 이 밥을 먹으면 생각과 마음이 열려 밝아진다. 더군다나 죄까지 깨끗이 씻고 나서 먹는 밥이다. 참으로 소박하고 아름다운 풍속인데 좋지도 않은 시에 쓰자니 왠지 미안스럽다.

작 성 자 : 서석훈 ranade@krj.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