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마음 속의 보석상자

보석 하나, 당신은 그 횡단 보도에서 일부러 발걸음을 늦추고 빨간불이 될 때까지 천천히 건넜었죠. 바로 옆에는 다리를 다쳐 목발을 짚고 길을 건너는 또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신은 일부러 걸음이 느린 척 했었지만, 나는 당신의 그 말 없는 배려에 살짝쿵 감동했었습니다. 비록 당신은 평소 "빨리 빨리"를 외치기곤 했지만 말입니다.


보석 둘, 길을 가는데, 왠 아이가 "비켜 주세요!"하며 서투른 자전거를 몰고 당신 옆을 지났었죠. 당신은 그 옛날 자전거를 처음 배우던 시절이 생각이 났던지, 그냥 피식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살짝 비켜 주었죠. 나는 당신의 그 순수한 미소에 시원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당신은 미소를 보이는 사람은 약한 사람이라고 말 했지만 말입니다.

보석 셋, 당신이 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을 때였습니다. 한 걸인이 들어 왔었죠. 주인에게 밥좀 달라고 했는데, 그냥 내 보내려 하네요. 식당에 밥이 없다는군요. 당신은 머뭇머뭇 주머니를 뒤적거리다가 돈 몇푼이 없는 것에 대해 조금 미안해 했었습니다. 나는 당신의 그 측은한 마음에 따뜻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얼마 전 당신이 껌파는 그 할머니를 사기꾼이라고 비아냥거리긴 했었지만 말입니다.

보석 넷,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아무 것도 해 준 것이 없다"며 미안해 하자, 당신은 그의 두 손을 꼬옥 잡으며 "난 충분히 많은 것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 사람은 당신의 연인, 당신의 친구, 당신의 가족, 당신의 직장 동료일 지도 모르겠군요. 나는 당신의 그 손길에서 넉넉함을 느꼈습니다. 비록 당신은 그들이 없는 자리에서 불평 불만을 토로하지만 말입니다.

보석 다섯, 당신의 옆을 축쳐진 어깨로 스쳐 가는 동료에게 당신은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기분도 꿀꿀한데 나랑 술이나 한 잔 하러 가지 않겠느냐고 권했죠. 나는 그런 당신의 자잘한 애정에 “짧은 사랑도 사랑”이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비록 당신은 쓸데 없는 애정은 귀찮은 것이라고 했었지만 말입니다.

보석 여섯, 친구들과 오랜만에 한 술자리에서 당신은 무슨 고민이 있는 듯 했으나, 끝내 말하지 않고 술잔을 들이켰습니다. 당신의 고민이 바로 그 친구로 인해 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당신의 아픔이 그렇게 깊숙이 자리 잡을 때까지도 친구와의 화해를 위해 일순간을 참아낸 당신의 인내. 그 속에서 나는 인연의 끈끈함을 보았습니다. 비록 당신은 사소한 일에도 화를 내며 친구를 당황케 하는 직설적인 사람이었지만 말입니다.

보석 일곱,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한다며 믿어 달라고 해 놓구선 거짓말을 할 때, 당신은 무척 실망스럽지만 그냥 모른 척 넘어가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그 넓은 이해심에 고귀함을 보았습니다. 비록 당신은 그 사람의 사소한 잘 못 하나에도 쉽게 실망하곤 했었지만 말입니다.

보석 여덟, 비 오는 날, 당신은 괜히 울적해져서 수다라도 떨어 볼까 하고, 핸드폰 번호를 이리 저리 검색하다가, 느닷없이 가족들이 생각이 나서 전화를 걸었죠. 그리고 "사랑해요."라는 말을 쓸쓸한 아버지의 귓가에 들려 주었습니다. 나는 그런 당신의 그 순수한 사랑에 삶의 아름다움을 보았습니다. 비록 당신은 아버지가 집에 들어 오면 자기 방으로 들어가곤 했지만 말입니다.

보석 아홉, 느닷없이 초등학교 시절 당신을 짝사랑했던 동창이 모교 사랑 사이트를 통해서 "너를 아직도 사랑하고 있다."며 황당한 메일을 보내 왔을 때, 당신은 그 메일에 반가움을 표시했습니다. 당신은 그렇게 추억에 대한 예의를 보여 주었고, 나는 그 속에서 사람의 향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당신은 가까운 사람에게 온 메일을 껌 뱉듯이 내뱉었지만 말입니다.

보석 열, 오늘. 왠지 몰라도 당신은 무척이나 피곤해 보이는군요. 어제의 행복이 오늘에도 이어지기를 바랬는데 오늘은 그렇지가 못했나요? 아니면 어제의 불행이 오늘은 끝나길 바랬는데 오늘도 역시 그랬나요? 그대는 그런 하루를 한숨으로 마무리하면서 "그래도 그럭저럭 살 만은 하잖아."며 피식 웃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당신의 작은 체념 속에서 유약한 인간의 삶은 강인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늘, 당신은 행여 스스로를 부정하고 스스로를 증오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도무지 용서할 수 없는 짓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나요? 그래도 잊지 마세요. 당신의 마음 속에 있는 보석 상자에는 자물쇠가 채워져 있지 않으니까요. 그저 두꺼운 먼지를 덮어썼을 뿐, 언제라도 꺼내어 볼 수 있는 것이니까요. 그 상자 안에는 태양처럼 빛나지는 않지만 깊은 어둠 속에서 희미한 빛을 안겨주는 보석이 들어 있으니까요.
자. 오늘은 주문을 세 번 외우고 잠을 청하세요.
"나는 아름답다."
"나는 아름답다."
"나는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