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무심한 듯 흘러간다. 하지만 돌에 새긴 글자가 수 천년을 가듯 역사는 자기 자신을 시간 위에 새긴다. 15년의 무궁화배, 그리고 그 이름과 역사를 이어 28회 차를 맞이한 코리안더비는 수많은 준족의 명마들이 그 이름을 한국경마사에 새긴 경주이며,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는 새 역사의 탄생에 환호한다.

5월 11일 일요일 서울경마 제7경주, 16두의 3세마들이 출전한 제28회 코리안더비(G1)엔 오직 수말들만이 이름을 올렸다. KRA컵 마일(G2)에서 차이를 크게 벌리며 첫 번째 화관을 목에 걸었던 `오아시스블루`는 단승식 1.5배의 압도적인 인기로 출전했고, 안쪽 게이트를 받아간 `이클립스더킹`이 4.1배로 두 번째 인기에 자리했다. 대부분의 마필들은 단승식에서 유의미한 자리를 찾아가지 못했으며, `원더풀노던`과 `용비패왕`이 복승식을 비롯한 2두 이상을 조합하는 승식에서 영향력을 발휘했다.

경주마 일생 단 한번의 영광으로 향하는 두 번째 게이트가 열렸다. 많은 경마 팬들의 예상처럼 `이클립스더킹`이 가장 빠른 발걸음으로 선두에 자리하였으나, 도주라고 표현할 수 있을 만큼 빠르고 강한 페이스로 경주를 이끌었다. 주자들은 경주를 운영하기 위한 자리를 찾아가기도 전에 첫 번째 코너를 맞이했고, 마군 후미가 매우 두텁게 형성되어 주자들 간 부딪힘이 수시로 벌어지면서 경주는 혼전 양상을 띠었다.

뒷 직선주로에 접어들자 마군이 비교적 길게 늘어졌지만 후미 마군은 여전히 두터웠다. `이클립스더킹`은 페이스를 유지했고,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던 `오아시스레드`가 추진해 나가자 이를 지켜보고 있었던 `운주가이`와 `오아시스블루`도 가속해 나오면서 선두와의 격차를 좁혔고, 곡선주로에 접어들자 외곽의 주자들 또한 앞선을 따라 승부수를 띄우며 간격을 유지했다. 이때, 선두그룹은 `이클립스더킹`, `운주가이`, `오아시스블루` 세 두로 좁혀졌다.

수 만 경마 팬들의 함성이 일대를 뒤흔들었다. `이클립스더킹`이 가장 먼저 직선주로에 접어들었고, 후발주자들이 뒤따랐다. 하지만 `이클립스더킹`은 답보변환에 실패했고, 그 발걸음이 점차 무거워졌다. `오아시스블루`와 `운주가이`는 달랐다. 그들은 발을 빠르게 바꿨고, `이클립스더킹`과 문세영 기수가 벌려놓은 격차를 순식간에 좁혔다. 진겸 기수의 재빠른 채찍 독려가 `오아시스블루`에게 닿았고, 유현명 기수도 `운주가이`에게 신호를 전했다.

`오아시스블루`는 오직 한 해의 한 두에게만 주어지는 삼관마의 자격을 쟁취하기 위해, 순식간에 `운주가이`를 넘어서고 `이클립스더킹`을 따돌리며 결승선을 향해 질주했다. 2016년의 `트리플 크라운` `파워블레이드` 이후, KRA컵 마일에서 우승했던 그 누구도 더비의 영광을 거머쥐지 못하였으나 `오아시스블루`와 진겸 기수는 그 9년의 징크스를 돌파하며 결승선을 가장 먼저 넘어섰다.

`오아시스블루`를 소유한 이종훈 마주는 10년 전 더비마 `영천에이스` 이후로 두 번째 더비마를 배출했고 `석세스백파` 이후 또다른 2관마를 탄생시켰으며, 백광열 조교사 역시 이종훈 마주와의 돈독한 인연으로 그 역사를 함께 써 내려가고 있다. 진겸 기수는 첫 그레이드 1 대상경주 우승을 `오아시스블루`와의 멋진 호흡과 함께 이루어냈고, `오아시스블루`는 기승을 했을 때 다른 마필들과 비교해서 너무 월등하기 때문에 "징크스는 징크스에 불과하며 올해 그 징크스를 깨고 삼관에 도전해 보자"라는 마음으로 경주에 임했다며 소감을 밝혔다.

우리는 2016년도에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삼관마 `파워블레이드` 이후 9년 만의 삼관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한국경마 역사상 세 번째 `트리플 크라운` 삼관마의 탄생을 우리는 과연 목격할 수 있을까? 혹은 예상치 못한 이변이 벌어질까? 믿음은 의심으로 입증되고, 과정으로 증명될 것이므로, 우리는 `트리플 크라운` 시리즈의 마지막 관문인 6월 15일의 제25회 농림축산식품부장관배(G2)를 기대하지 아니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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