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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입춘 (윤한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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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 윤 한 로 얼핏 날이 풀리니 을씨년 허리 병이 도진다 개 키우는 집 지나 왕벚나무 돌길 비린내 난다 거무죽죽한 나뭇가지 가랑이 사이마다 채 녹지 않은 흰 눈 얹혔다, 애개개 아지매들 저저금 개짐 한 줌씩 차듯 주책바가지 같은 생각이다만 좋은 일 많것구나 시작 메모 주책바가지들은 진실하다. 주책바가지들은 슬프다. 주책바가지들은 쓸쓸한 게다. 주책바가지들은 아픈 게다. 그래서 주책바가지들은 상상력이 풍부하다. 주책바가지들은 자유스럽다. 사뭇 즐겁다. 진지한 척, 다소곳한... More >> 2013.02.15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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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때 (윤한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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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윤 한 로 추운 겨울밤 저마다 내복 겨드랑이 속 뒤져 맨톨맨톨하니 굵은 보리알캥이 이 한 마리씩 잡아 툭 툭, 터치면 그나마 따뜻했을 게다 배불렀을 게다 루핑 집 단칸방 그때 일곱 식구들 시작 메모 우리 집은 루핑집이 다닥다닥 붙은 인천 송림동 산동네에서도 가장 날망이었다. 아버지는 국민학교 선생을 하다 진즉 그만 두고 와리바시를 깎았다. 크건 작건 일곱 식구 모두 와리바시 일에 달라붙어야 했다. 그때 겨울은 어찌나 추운지 방 안에 파란 잉크병이 쩍쩍 얼어 갈라 터졌다. 밤... More >> 2013.02.02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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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41) - 무대가 그리워지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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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를 자주 듣다 보니 가끔은 무대가 그리워진다’ 고 읊은 40대 동영상 제작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라디오를 자주 듣게 된 것도 사실이었고 무대가 그리워진다고 한 말도 사실이었다. 최근에 그가 라디오를 자주 듣게 된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하나는 텔레비전시청을 하다 보니 눈이 뻑뻑해지는 눈의 피로를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눈의 피로는 스마트폰에 의해서 가중되었는데 그 작은 화면을 이리저리 위치를 바꿔가며 보느라 목을 보통 혹사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이에 눈과 목을 쉬게 할 요량으로 라디오라는 매체를 자주... More >> 2013.02.02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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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순(耳順) (윤한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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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耳順) 윤 한 로 그래 봤자 마누라 한주먹감밖에 안 되는 석자 세치 쪼맨한 인생 이제 다 내려놓고 순순해질란다 귓가 붉은 콩 혹만 더욱 애린 이순 늑대나 할켜 갈! 시작 메모 이번 섣달 그믐날 밤에 미카엘라와 흑맥주 한 캔 뜯었다. 식탁에 앉아 절은 아몬드 몇 개 놓고 겨우 한 잔 찌그리고 나니 졸립다. 미카엘라는 그새 두 잔이나 찌그렸다. 마누라는 어느새 나보다 술도 더 세고 힘도 더 세고 말도 더 잘 한다. 산도 더 잘 타고 신앙심도 더 깊고 아는 것도 더 많다. 힘으로 떠박다지... More >> 2013.01.26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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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40) - 음악 좋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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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바 월광 소나타에서 동영상 제작자인 남자와 모델 고대해는 밤 8시 반 무렵에 쓴 맛 나는 와인 한 병을 시켜놓고, 서로 마주보다가 가끔은 고개를 돌려 자그마한 무대 위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는 노래를 읊고 있는 여가수에게도 눈길을 주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정식 집에서 코스 음식을 먹은 남녀가 배가 어느 정도 부른 상태에서, 빚 독촉이나 빨리 오지 못하겠냐는 성가신 전화도 없는 고요한 시간의 와중에, 이러한 부드럽고 몽환 적인 색채가 배어 있는 시간의 물결 위에 떠 있으니 누가 봐도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More >> 2013.01.26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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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나기 (윤한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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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윤 한 로 시퍼런 개천 물 속에 똥방뎅이 치켜들곤 이내 대가리 홰홰 부애가 났나보다 귀때기 떨어져나갈 듯 오리란 놈 귀빠진 날 무지개 다릿간 나는야, 놀면 뭐 하리 빵떡모자 눌러쓰고요 십분이고 이십분 겐소롬 비웃음이나 흘리련다 시작 메모 추운 겨울날 우리 동네 미라보 다릿간에는 뻥튀기 파는 사람, 옷 파는 사람, 귤 파는 사람, 돈 버는 사람들. 우리 동네 세느 강에는 똥물에 고기 잡는 오리란 놈. 몸뚱이가 지혜고 힘이고 재산이고 또 시다. 구경하자니, 물고기 한 마리 잡기 위해 시... More >> 2013.01.19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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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39) - 쓴 맛 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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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광 소나타’라는 클래식하고 몽환적인 제목을 달고 있는 와인바로 남자가 고대해를 안내해, 엔틱한 테이블에 그들이 앉았을 때, 앉아서 와인의 선택권을 고대해에게 줬을 때, 그때그녀는 와인 이름 대신 ‘쓴 맛 나는 와인’이라고만 말했다. 이 말에 남자가 놀란 건 모든 와인은 쓴 맛이 나기 때문이 아니라, ‘쓴 맛 나는 와인’이라는 제목이 마치 따로 있다는 것처럼 당당하게 말했기 때문이었다. 이 주문을 받은 주인장 같은 아저씨는 “쓴 맛이 좀 강한 와인을 찾으시는군요.” 하고 되받아 말했다. 단맛 나는 와인, 떫은 맛 나... More >> 2013.01.19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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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정 머슴 문체 (윤한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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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정 머슴 문체 윤 한 로 김유정이 칵 죽어버리지 못하고 겔겔 살아남았겠구나 거적때기 게우 들시곤 폐병쟁이 퀭한 눈으로 바라보았겠구나 두메나 산골 응칠이 덕순이 봉필이서껀 따라지들 요강단지 옆 활짝 흐드러진 샛노랑 개나리 같아라 오죽 쟁그러웠을까나 겨드랑 수컷 냄새 시금털털 쇠죽 솥 아궁이에 불 활활 밭 두럭 꼬라박혀 지게작대기에 훌 두들겨 뒷동산 무덤가 할미 한송이 눈물 그만 핑 돌아 싱둥겅둥, 응오 뭉태 따위 무지랭이들 지껄이던 순 쌍눔 글발이여 정겨운 머슴 문체여 ... More >> 2013.01.12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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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38) - 저녁 식사 후에 가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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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정식집에서 나온 그들은 약 삼십초 정도 말없이 걸었다. 그들, 40대 동영상 제작자와 모델 고대해는 1차로 한정식집에서 코스 요리를 먹었고 술도 한 잔 걸쳤으며 몊 가지 주제에 대해서는 비교적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하기도 하였던 바였다. 그들은 우선 배가 불렀다. 음식에 대한 욕구가 채워지면 그 다음엔 다른 욕구를 가지기 마련이었다. 그 욕구로 말하자면 남자에겐 성욕의 해소가 우선순위인 반면, 여자인 고대해는 - 비록 그 모양새는 열 남자 저리 가라 할 만큼 파워풀하지만- 여자이다 보니 분위기에 좀 젖... More >> 2013.01.12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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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37) - 코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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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자리를 옮길까요?” 두 남녀 사이에 있어서 이러한 제안이 남자의 입에서 나왔다면 우리는 그 말의 진의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그 제안이 식사 후에 나온 것이라면 더욱 더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 하겠다. ‘차나 한 잔 할까요?’ 라든가 ‘바라다 드리겠습니다.’와 같은 건전하고 명확한 의사 표명이 아닌 다만 ‘자리를 옮기자’라면 이게 도대체 무슨 뜻인지 의문이 드는 것이다. 남자들끼리라면 식사 후에 호프집이나 때론 카페 때론 노래방 때론 룸살롱 등으로 이어지며 이미 든든해진 뱃속에 상당한 에너지... More >> 2013.01.05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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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힘 (윤한로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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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힘 윤 한 로 나의 힘은 집 없는 것 차 없는 것 핸드폰 없는 것 집이 생기고 핸드폰이 생기고 배가 좀 부르고 나의 힘은 오직 하나 차 없는 것이었다만 웃고 즐기는 사이 당뇨가 생기곤 에라, 당뇨는 나의 힘 덧붙여 굽히고 굽혀라 밥 벌어먹느냐 귀밑머리 허연해도 굽신거림 또한 나의 힘, 나의 자랑 한밤중만치 나를 벌떡벌떡 일으키는 그 비굴, 아아 나의 힘이여 시작 메모 그리움도 힘이고 사랑도 힘이고 기쁨도, 걷잡을 수 없는 슬픔도 힘이고 고통도 힘이고 가난도 힘이고 대... More >> 2013.01.05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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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36) - 어디 또 가시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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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제작자 겸 감독과 모델 고대해가 담화를 주고받는 한정식 집은 일반 술집처럼 밤늦도록 떠들고 마시는 그런 장소가 아니었다. 식사와 함께 조용히 대화를 나누며 대화 내용과 상관없이 서로에 대한 예의를 어느 정도 갖추고 격한 몸짓이나 누가 봐도 오해할 만한 성적 행동이나 불필요한 동작은 삼가는 것이 묵계처럼 내려오는 곳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식사가 에이 비 시 이렇게 나뉘어져 있고 일인당 식사비가 삼만 오천 원에서 구만 원까지 갖춰져 있는 곳에서는 저절로 예의심이 발동하여 심할 경우 상호 공손 지경까지 이르는... More >> 2012.12.30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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