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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66) - 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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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에 당첨된 사실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1등 복권에 당첨되는 꿈을 꾸는 40대 동영상 제작자의 상상은 끝간 데가 없었다. 예전에 시간이 없어서 챙겨주지 못한 그녀 미나, 그 때문에 가슴 속이 괜히 허전하고 뭔가 미진했던 바, 이제나마 그녀를 챙겨주고 대화를 통해 발전된 관계로 나아가보자 하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발전된 관계로 나아간다 하더라도, 주머니에 복권 당첨금 오백이 있고 통장에는 그보다 200배는 더 많은 돈이 있다는 소리는 하지 않을 터였다. 돈이 있다고 밝히는 순간 아무리 순수한 마음을 ... More >> 2013.08.04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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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한로詩) 아침 그믐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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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그믐달 윤 한 로 가시 끝 밤새도록 맺힌 이슬 한 방울 뾰족한 가시도 저렇게 우는구나 나이 먹고 추레하니 나 이제야 보이네 푸르스름한 아침 그믐달 눈 뜨네 시작 메모 아카시아 이파리 속 뾰족한 가시 끝에 맺힌 이슬을 본다. 밤새 내린 빗방울일지도 모른다. 늘 풀잎 위에 맺힌 진주 이슬만 읽거나 알고 있었지 가시 끝 눈물은 생각한 바 없었다. 가시란 존재는 남들에겐 아픔이지만 정작 자신에겐 깊은 슬픔이리라. 나 또한 나이 먹으며 점점 가시 같아지니. 오늘도 찔러보는 바지 주머니 속엔... More >> 2013.07.26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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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65)-스타가 되기 전에 엮어두는 게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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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가 되기 전에 엮어두는 게 필요해 복권 1등 당첨 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갖은 상상을 다하고 있는 우리의 40대 동영상제작자 남자는 마침내 `미나`라는 신인 여배우와 저녁약속을 잡는 데까지 이르렀고, 이제 그녀를 만나러 약속장소로 가고 있는 중이었다. 지하철 3번 출구라든가 엘지 편의점 앞이라든가 우리은행 정문 앞에서 보자는 등 그러한 약속은 사내들끼리 즉 만나자마자 한 잔 하러 가야 하는, 촌각을 다투는 사내들끼리, 혹은 찻값따위 아깝게 왜 낭비하느냐고 생각하는 오래된 연인이나 부부끼리나 하는 것으로, 아... More >> 2013.07.26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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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64) - 여배우를 만나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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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를 만나기 전에 복권에 당첨된 환상을 가진 40대 동영상 제작자가 당첨 이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꾸는 꿈은 아무리 길고 아무리 자세해도 질리지가 않았다. 아니 자세할수록 길수록 사내는 구체적인 행복감을 맛보며 그 황홀한 도취 속에서 깨어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주머니에 돈을 잔뜩 챙긴 그가 머리에 떠오르는 순서대로 전화를 해보자 미나라는 아이가 받았고 이 신인 여배우의 도착을 기다리며 잠시 전시장에서 그림 감상을 하고 있었는 바, 배우의 도착이 가까워지면서 더 이상 여기서 눈 아프게 그림을 들여다봐... More >> 2013.07.21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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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한로詩) 까치 택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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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치 택배 윤 한 로 빨강 얼굴 빨강 코 웬 사내 헐럭하니 망사조끼엔 ‘까치 택배’ 새겼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 온다는 게로군) 근사하다 오늘도 반지하 우리게 저벅저벅 걸어들어완 박스 하나 휙 뿌리고 간다 빨강 팔뚝 빨강 다리 대낮부터 삭힌 홍어 냄새 풍기며 어드메 먼 친척이나 되드키 시작 메모 장마철 반지하 사무실은 훅훅 찐다. 노트북 잡무 속에 머리를 붙들고 앉아있자니 짜증스럽다. 언제부터 택배가 너무 많이 온다. 하루에 십여 차례도 더 온다. 쓸데없는 책자니 ... More >> 2013.07.21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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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63) - 부자의 심정을 알아가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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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심정을 알아가며 복권에 당첨된 꿈을 꾼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당첨된 이후의 자신의 행적에 대해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있는 바 그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 아침부터 구두를 닦고 아점으로 양평 해장국을 먹고 편의점에 가 복권 두 장을 구입하고 슬슬 거닐다 업계 사람 하나를 만나 자금사정이 절박한 그와는 달리 한가한 마음으로 그의 지루한 이야기를 들은 다음 찻값을 내주고 헤어져 이제는 저녁을 함께 할 사람을 구하는 바 상대는 남자나 여자나 여대생이나 상관없다고 하였다. 그렇게 해서 복권에 당첨된 남자... More >> 2013.07.13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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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한로詩)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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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 윤 한 로 아 아 문리대니 예대니 계집애들은 왜 그렇게 깔깔거리는지 스모르에 백구두에 꾀죄죄, 시 나부랭이 좀 써보겠다고 대학물 한번 먹겠다고 나 같은 놈팽이 연천에서 올라와 나무 벤치 위 외롭고도 마냥 쪽팔리더라 청자 한 대 꿀리곤 신문지 한 장 뒤집어썼지 스물둘 초여름 파란 하늘에 흰 구름 한 덩어리 천천히 천천히 흘러가도록 시작 메모 문학을 하겠다고 대학물 좀 먹겠다고 삼수하고 연천에서 올라왔는데, 스물두 살 내가 타던 84번은 지금도 아프게 한다. 대지 극... More >> 2013.07.13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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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62) - 복권에 당첨된 남자의 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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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에 당첨되는 사람은 소수다. 6등짜리야 수도 없이 많지만 십만 원대는 드물고 백만 원대는 가뭄에 콩 나듯 하며 2등이라 일컫는 천만 원대는 감히 꿈꾸기 힘들며 적게는 수억에서 많게는 수십억에 이르는 소위 1등 당첨은 과연 이승에서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드는 대박 행운인 것이다. 그런데 당첨을 꿈꾸는 건 손쉬운 일이어서, 특히 복권 한 장을 사둔 상태에서는 그 꿈은 대단히 구체적인 양감을 가지고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지게 된다. 40대의 동영상 제작자는 복권 당첨에 대한 꿈뿐 아니라 당첨금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매우... More >> 2013.07.06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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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미사 (윤한로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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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미사 윤 한 로 두 손 겹쳐 성체를 받아 모신다 마냥 지지고 볶고 저들 위해 나 또한 옷이 되리니 굶을라 밥이 되리니 갑자기 뒤설렌다 그렇고 그런, 시시껄렁한 이놈한테서도 자칫 춤과 노래 흘러나올 것 같아 휘휘 보따리니 전대 돈이니 다 놓고 부르튼 손발 오늘 하루 지팡이 하나만으로 가본다 시작 메모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은 걸핏하면 발가벗고 춤을 췄다. 짐승들과 얘기하고 노래했다. 이스라엘 다윗왕은 싸움에서 이기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가벗고 춤을 ... More >> 2013.07.06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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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한로詩) 이스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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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치 윤 한 로 더두 덜도 아닌 꼭 어제만큼 떨어졌네 양재기에 한 홉큼 빨간 알갱이들 꼭두새벽 이슬 머금어 좀 시금털털하쟤 아버지 오입 가 돌아오지 않는 된 밤, 파랗게 걷히고 * 이스라치 : 산앵두나무 열매. 시작 메모 붉은 버찌 알알이 깔린 아스팔트 언덕길을 오른다. 빗자루에 쓸리고 애들 발에 그렇게 짓밟히고 차바퀴에 으스러졌을 텐데 또 다시 어제만큼 깔렸다. 언제나 출근길은 화가 나지만 이것들로 참을 수 있다. 이 도시에서 이슬맺힌 버찌 언덕길은 내 마음에 ‘이... More >> 2013.06.29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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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나귀 신사(161) - 복권 당첨금 받으러 가는 길에 웃으면서 산 복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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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 당첨금 받으러 가는 길에 웃으면서 산 복권이 우리는 복권에 당첨된, 말하자면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가정하고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40대의 동영상 제작자가 즐겨 상상하는 한 대목을 보고 있다. 그는 주머니에 5만원 권 60장과 만 원 권 100장 그리고 분실 위험 때문에 일일 한도를 5백만 원으로 설정해놓은 체크카드를 넣고 길거리에서 구두를 닦은 다음 전문 음식점을 향해 아침겸 점심을 하러 걸어가고 있었다. 소위 여자들이 말하는 `브런치`라는 건데 그녀들은 그것을 장소와 밀접하게 엮어 예쁘고 세련되고 원두커... More >> 2013.06.29Mo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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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한로詩) 기말 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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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말 고사 윤 한 로 우리 재수할라요 웬만한 애들 거의 엎드리고 수학 시험 시간 수학 시험 문제지에 모자도 그리고 우스꽝스럽게 권총도 그리고 시내 삐끼 다리도 그리고 조용조용히 어느 소녀 얼굴과 다시 그 얼굴 코 밑에 찍찍 숯검정 수염도 칠하고 속절없이 먼 산 바라다간 어느새 손가락 깨물며, 물어뜯으며 깨알같이 쓰는 시란 정말 맛있습죠만 우리 곧 구겨버릴라요 시작 메모 조선시대 문장가 이옥이 쓴 글 중에 저잣거리 모습을 쓴 게 있다. 소, 닭, 청어 끌고 엮고 오는 사람... More >> 2013.06.22More >>